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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쓰죽회' 가입하기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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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7/12/07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7/12/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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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5070 모임에서 좀 짠한 얘기를 들었다. 은퇴를 앞두고 집과 비즈니스를 정리해 적지 않은 돈을 아들에게 물려준 A씨 스토리다. 그의 노후 목표는 웰페어 수령. 일찌감치 시니어 아파트를 신청해 당첨되는 행운까지 잡았다.

그런데 마가 낄 줄이야. 아들 부부가 불화 끝에 갈라서고 말았다. 이민 와 고생 고생하며 번 돈이 위자료로 몽땅 며느리에게 넘어간 것.

A씨는 허탈해졌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원래 자신의 소유란 걸 밝힐 수도 없고. 소송을 제기 해봤자다. 되레 웰페어 사기로 쇠고랑을 찰 게 뻔해 그저 냉가슴 앓는 꼴이 됐으니. 안 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론 자업자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A씨가 유산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면 남은 삶을 훨씬 풍요롭고, 품위 있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그의 처지가 짠해지는 것이다.

그가 진작에 '다이 브로크(die broke)'의 삶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다이 브로크'는 빈털터리로 죽음을 맞는다는 의미. 쉽게 말해 '쓰고 죽자'가 원뜻에 가깝겠다. 20년 전 유명 재무설계사가 동명의 책을 써내 화두가 됐던 말이다. 책은 뉴욕타임스 '이 주의 베스트셀러'에 18주나 올라있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저자는 스티븐 폴란. 부동산 개발과 벤처캐피털로 큰돈을 벌고 명성을 얻은 그는 어느 날 폐암 판정을 받는다.

번 돈을 써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젠장, 뭐 이런 인생이 다 있어. 그런데 뜻밖에 반전이 일어난다. 세컨드 오피니언(두 번째 의사 소견)을 받은 결과 오진으로 드러난 것.

폴란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돈 모으기와 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뒤집은 것. 모은 돈을 후회 없이 쓰고 떠나라는 주문이다. '다이 브로크'가 생겨난 배경이다.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우리도 '공수래공수거'란 말이 낯설지 않다.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고 해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할까. 하지만 '다이 브로크'는 표현이 긍정적이다. 인생은 '공수거'. 그래서 다 쓰고 가라는 거 아닌가.

폴란이 최초 진단대로 죽음의 병상에 누워있었다면 너무 원통해 눈을 편히 감지 못했을 것 같다.

어쩌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수퍼리치'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터. 이미 '다이 브로크'를 선언한 탓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 재산은 거의 모두 비영리 자선재단에 넘어간다. '다이 브로크'의 전형이라고 해야 할지.실제로 미국인의 절반 가량(46%)은 '공수거'로 삶을 마감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그래서인지 '쓰고 죽자'는 취지에 동감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쓰죽회'를 결성해 모임을 갖는 경우가 주변에 적지 않다. 돈과 재능 등 평생 일궈온 자산을 죽기 전에 쓰고 나누면서 살자는 데 의기투합한 사람들이다.

동창회를 비롯해 각종 송년 모임이 줄을 잇는 요즘. 지갑 열기에, 놀기에, 그리고 쓰기에 딱이다. 100세 장수시대엔 친구와 가족 등 다양한 무형의 자산은 필수다. 자린고비나 스크루지 딱지가 붙는다면 어느 누가 내게 곁을 주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선배와 후배에, 친지에 밥 사주기 결심을 해보자. 복이 넝쿨째 들어오고 건강이 더욱 좋아질 테니까. 더구나 베이비붐 세대들이 쓰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한 타운의 경기는 살아나기 힘들다.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일진대 제대로 써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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