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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 이 세상 모든 학문이 사라진다 해도

멋쟁이였던 우리 선조들은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학식 유무와 관계없이 글짓기를 생활화하다시피 했다. 서당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주막거리에서 탁주 한잔 마시며 시를 지어 읊었다. 주모가 이를 듣고 즉석에서 장원을 뽑는다. 술값내기였다.

나귀를 타고 가는 봄놀이, 가을 단풍구경 가는 길 위에서도 시를 지었다. 한 사람이 한 연씩 지어 윤창(輪唱)을 하다보면 아름다운 시조 한편이 어렵지 않게 완성되기도 했다.

여 말과 이조 초의 문신 권근의 글 속에 나오는 이주도의 얘기도 그렇고, 김홍도의 그림 ‘장터길’을 보면 이런 풍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 장수의 병사 통솔에도 시문(詩文)이 다리 역할을 해왔다면 그들의 생활 속에 문학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신숙주가 변방 육진에 가 있을 때 여진 오랑캐들이 포위해왔다. 참모들이 당황하는데 신숙주는 지필묵을 가져오라 이르고 시 한수를 지어 의젓함을 보이니 참모와 장수들이 이에 힘을 얻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를 조정에 보고하자 세조는 표주박으로 술잔을 삼고 “그대에게 이 잔으로 정을 나누노라” 하며 잔 밑에 시를 한수 써서 주었다.



이처럼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나눔은 신라 때도 있었으니 우리는 그 흔적을 포석정에서 보고 있다. 어찌 멋진 민족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즈음 출판 문화와 더불어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 같은 사정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책이라면 거의가 문학서적이었는데 이제는 생활의 도구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쟁사회가 되어 온갖 기술 이론 서적이 앞지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친구에게서 이성으로 넘어가는 사춘기에 이성과 성에 대한 호기심, 곧 리비도를 우리는 책속에서 찾았었다. 긴 소설 속에 나오는 단 몇 줄 속에서 인간의 애증을 헤아렸고, 시인의 시 속에서 인생의 슬픔과 낭만과 아름다움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제는 책이라는 매개체 없이 빠르고 손쉬운 전자 매체나 직방으로 이성에 접근, 성을 알아버릴 기회가 많아졌으니 구태여 책 속을 헤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문학을 통한 대리경험이나 멀리 돌아가는 길이 불필요해진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야만적인 힘에 의해 모든 학문이 사라지고 하나만 남겨져야 한다고 가정할 때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은 문학이다”라고 말한 롤랑바르트의 경고나, 문학의 죽음을 예고한 앨빈 커넌이나, 우리들의 우려는 문학이 사라질 때 오는 인간성의 사막화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럼은 “돈이나 지위, 권위는 생명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치고, 인생을 즐기고 보람과 의를 추구하는 존재의 욕구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인이 아니어도 적성에 맞는 아마추어 시인, 화가, 음악인이 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서 보이지 않게 삶의 질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자는 것이다.

저간 물신주의가 팽배해가는 이 시대 시인이나 수필가 등 문필가나 화가, 음악인 등 예술인들이 늘어가는 역설적 현상은 현대 사회의 내적 갈증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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