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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마저 '애들아 미안해'…서글픈 마지막 길

연말기획:한인사회 소외된 노년의 삶(8)
빠듯한 웰페어 아껴 장례비용 마련
"죽더라도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

가족 규모가 줄어들고 홀로 사는 노인 수가 급증하면서 가족·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던 장례 절차가 산업의 범위로 들어왔다. 최근에는 웰빙에 이어 '웰 다잉'이 유행처럼 번져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LA지역 한인 노인층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한인 노년층 대부분은 죽음이나 장례 절차에 대해 '가족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남순(76) 할머니는 "장례식 본 적은 여러 번 있으니 절차는 대충 알아. 하지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잘 몰라. 아들이 알아서 화장해 주겠지"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물어보니까 매장보다 화장이 더 저렴하다고 하데. 그래서 아들한테 그냥 화장해달라고 미리 말 해놨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 어르신도 있었다. 박복자(82·가명) 할머니는 "아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 요즘 힘들어. 손녀딸도 대학생이라 한창 돈 많이 쓴대. 그래서 죽더라도 지금 죽으면 안 돼"라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웰페어를 아껴 자신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이 없는 노인은 죽음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최모 할아버지(89)는 "주변에서 상조회를 권유하기에 갔더니 나이가 많아서 가입을 못 한대.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어째. 죽으면 경찰이 발견하고 알아서 처리하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텅 빈 빈소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70대 이명향(가명) 할머니는 7년 전 남편을 하늘로 보낸 이후 교회를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교회에 자주 나가려고. 신앙도 신앙이지만 교회 사람들 없으면 장례식에 올 사람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 있는 딸은 한국으로 시집갔고, 친인척들도 전부 한국에 살고 있어. 내가 죽으면 당장 와줄 사람은 교회 사람들 밖에 없어"라고 했다.

신에게 기대는 믿음과 내 장례식에 조문객이 올 거라는 믿음이 유독 노년층이 신앙 생활에 열심인 이유로 비쳐졌다.

사실 장례식 조문객 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고인과 자녀의 '종교 활동'이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면 조문객 수가 많은 편이다. 고인 본인 대신 자녀가 종교활동에 헌신적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오래 종교활동을 했나' 만큼 중요한 문제는 사망 전까지 지속적으로 예배에 참석했는지 여부다.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노인은 마지막까지 미안한 마음을 품고 눈을 감는다.

지난 4일 LA한인타운 저소득층 아파트에서 홀로 사망한 한 70대 노인은 숨지기 며칠 전 이웃에게 "치매에 걸린 것 같다. 몸도 아프다"고 호소했다. 노인은 마지막 월세 259달러를 매니저에게 건네며 한사코 미안하다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12월 6일자 a-3면>

몇 년 전, 한 70대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에서 "불미스럽게 생애를 마감할 수밖에 없는 내 처지를 이해해 주게. 늙고 병들고 재산도 날려버린 초라한 독거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네. 세상사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진 낙오자인 나는 더 이상 우매한 삶을 이어갈 의욕을 상실하지 오래 됐네"라고 썼다.

한편, 한인사회에서 장례는 주로 매장·화장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장의 경우 묘지 부지·관·식비 등 기타 비용을 포함해 총 2만5000~3만 달러가 소요된다. 화장은 일반화장·참관화장·당일화장·직화장 등 4가지 방식이 있고, 총 비용은 1만 달러 선이다.

내 죽음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 '애잔함'

장례 비용 준비 않거나
가족·상조회에 의존
가장 싼 '직화장' 늘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층은 주로 상조회에 가입해 장례 비용을 마련하고 있었다. 상조회는 계모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LA한인타운 내에 있는 상조회 10여 곳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미주한인상조회'에는 약 1300명 회원이 가입돼 있다. 회원 자격은 60세 이상 85세 이하 시니어로 제한된다. 처음 가입할 때 가입비 100달러를 내야하고 연회비는 30달러다. 회원이 사망하면 다른 회원으로부터 1인당 10달러씩 걷어 운영비(10%) 공제 후 나머지 금액을 유가족에 전달한다.

사망자가 한꺼번에 많이 발생할 때에는 1인당 최대 80달러까지만 내고 나머지는 상조회에서 대납한다.

한인사회 상조회는 친숙하고 가입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탈퇴 시 가입비·연회비·이미 지불한 상조금 등 비용을 상환 받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상조회를 보험처럼 생각한 시니어가 뒤늦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신중섭(74·가명) 할아버지는 "쥐꼬리만한 웰페어에서 상조금까지 내자니 답답하다. 그래서 상조회를 탈퇴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동안 냈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이순영(80·가명) 할머니는 "딸에게 장례 비용을 부담하게 하기 싫어 상조회에 가입해볼까 했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망설이게 된다"고 전했다.

상조회보다는 덜 친숙하지만, 일부 시니어는 장례 보험으로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장례 보험은 생명 보험의 일종으로 적게는 2만5000달러에서부터 많게는 50만~100만 달러까지 개인 형편과 요구에 따라 보상 한도액을 정할 수 있다. 저축성이 강해 적립금이 불어나기 때문에 실제 수령액은 생존기간에 따라 보상액보다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장의사 임성혁 장의사는 장례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뒤늦게 부모의 장례 방식을 놓고 자식끼리 다투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온전히 모셔야지"라는 '매장'파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라는 '화장'파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다.

임 장의사는 "꺼내기 어려운 주제인 줄은 알지만 미리 장례 방식·비용 등을 상의해야한다"며 "자녀가 많아도 서로 떠넘기거나 부모가 장례 보험 가입된 사실을 몰라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임 장의사에 따르면 최근에는 추도식 없이 화장 절차만 거치는 '직화장' 선택 비율이 늘고 있다. 한인사회 경기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다. 임 장의사는 "가장 저렴한(200~300달러 선) 직화장을 하는 한인이 많다"며 "화장 방식을 원해서 화장을 하는 경우는 상관 없으나, 매장을 원하면서도 비용이 부담돼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정인아·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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