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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또 하나의 은퇴 전략 '요리'

악역 배우로 잘 알려진 최준용(51)씨는 17년 전 이혼하고 부모집에 얹혀 살고 있다. 평생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지라 아직도 73세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아버지와 함께 얻어 먹고 있는 신세다. 어머니는 자식과 남편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내가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니고 몸도 움직이는 종합병원인데…남자들도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 재미있을 텐데…."

어느날 최씨는 부모님께 깜짝 선물을 선사하리라 마음먹는다. 그가 직접 만든 요리를 부모님께 대접하는 것이었다. 음식재료 구입부터 요리 순서까지 전문 요리사의 지도를 받았다.

그래서 내놓은 첫 요리가 전복과 낙지를 넣어 만든 '전복영양솥밥'. 부모는 깜짝 놀라며 "너무 맛있다" "앞으로도 자주 해다오"를 연발한다. 어머니는 "평생 처음 아들이 해준 밥을 먹으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요리를 해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는 셰프의 마음을 최씨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다양한 술안주 요리로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수준이 됐다. MBC 다큐 '남자, 요리와 사랑에 빠지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요리를 시도하기 전, 친구들로부터 '집안이 편의점'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온갖 1회용 식품들을 애용했던 최씨가 '요리로 행복해질 수도 있구나'로 변화하는 과정은 불과 한 달 정도다.

사실 요리는 매우 이타적인 행위다. 요리사는 자신이 맛있게 먹겠다는 마음보다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선다. 어머니들이 식구들을 먹인다는 동기 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면 '밥에 물 말아 김치 얹어 먹는' 걸로 때우기 다반사일 것이다.

요리는 내 수고를 통해 타인이 행복해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심과 이기심이 자리를 틀 여지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들에게 가끔 해주는 얘기가 있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며 자기 혀를 충족시키려는 미식가보다는 음식을 만들어 남의 혀를 즐겁게 해주려는 심성이 훨씬 배려심이 많을 것이라고.

요리가 좋은 또 하나는 '창조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여러가지 원재료를 이용해 그럴 듯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예술의 창작 과정과 비슷하다. 사극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장금에게 요리를 가르칠 때 "요리는 만드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이다"고 한 말은 요리가 창작임을 선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요리에 사용하는 주방기구는 물론이고, 음식을 담을 그릇 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진다. 한국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남자들이 요리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면서 그릇 전문점을 방문하는 남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100세 장수시대가 도래한 이 시절, '요리하는 남자'가 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아내의 신세를 지는 소위 '삼식이'가 되어 구박과 핀잔을 받는 남편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주방 근처에도 가지 않던 남편이 어느날 앞치마를 두르고 아내를 위해 식탁을 마련한다면 그 가정의 행복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얼마든지 감각의 변화를 부려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니 그 창조적 행위의 만족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요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맛있게 함께 먹는 시니어 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정이 넘친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기 보다는 맛있는 것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송년 결심은 어떨까.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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