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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오케이 미 미”

요즘 한국에서는 국제화 시대에 영어에 능숙하고 유창해야 한다는 구실로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개인 교습도 하고 학교마다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는 것이 유행된 일도 한참 됐다. 우리 때는 중학교 입학해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교 입학한 첫해 영어는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그분은 영어 독본을 가르치셨고 영어 회화 시간이 따로 있었다. 영어 회화 담당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 선생님이었다. 오래 외국에서 살다가 8·15 광복 되고 귀국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그분을 할아버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수업 첫 시간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다짜고짜 영어로 말씀하셨다. 실제로 학기 내내 그분은 영어로만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분이 외국 사람인 줄 알았다. 아무도 그분이 우리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화 시간 첫날은 숫자를 세는 것으로 시작했다. “one, two, three.......” 숫자 하나하나를 발음할 때마다 선생님은 지휘봉처럼 생긴 막대기를 아래위로 움직여 장단을 맞추셨다. 우리는 모두 따라서 했다. 그러고 나서 앞에서부터 한 사람씩 일어나서 발음해보라고 하셨다. 발음이 선생님 맘에 들면 “Very good!” 하셨는데 우리에게는 “보리굿”처럼 들려서 이것이 선생님의 별명이 되어버렸다.

우리 반에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출신 K가 있었다. 하우스보이는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들의 청소, 빨래 같은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해주는 소년들이다. 그때는 미군들이 전쟁고아들을 하우스보이로 거두어 보살펴 주고 있는 일이 흔했다. K가 고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번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보리굿’ 선생님에게 다가가 말을 건 일이 있었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영어로 선생님과 말을 나누는 그를 우리는 모두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에 그는 좀 으스대고 건방져졌다.



어느 날 K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느닷없이 수업 중에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그어 댔다. 마침 조용한 순간이어서 그의 자리가 맨 뒤에 있었는데도 성냥불이 ‘확’하고 붙는 소리가 온 교실에 크게 울렸다. “Who has the match(성냥 가진 사람 누구냐)?” 선생님의 큰 호령이 떨어졌다. “오케이 미 미(OK me, me).” K가 한 손을 번쩍 쳐들고 한 대답이다.

선생님이 K를 교단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항상 부드럽고 온화하신 ‘보리굿’ 선생님이 그처럼 화나신 것은 처음이었다.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라고 하시고 막대기로 몇 차례 때리셨다. 우리는 성냥 켠 일 때문에 노하신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날 학교가 파하기 전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그 얘기를 꺼내셨다. ‘오케이 미 미’는 양공주나 하우스보이들이 쓰는 막된 영어라고 하셨다. 우리말의 상스러운 막말을 예로 들어 설명하시며 존칭어 ‘sir’ ‘madam’ 그리고 영어 문법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보리굿’ 선생님이 화내신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긴 당시에 우리 또래에서는 이런 식의 짧은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나 막된 영어가 꽤 유행하고 있었다. 미군 트럭이 지나갈 때면 “초콜렛도 기브미(Chocolate give me)!” 하고 외치는 소리는 늘 들었고 여기에다 곡조까지 붙여서 “초콜렛도~ 씨가렛도~ 매니매니~기브미(Chocolate, cigarette, many many give me)”하고 흥얼대기도 했다. “유 오케이, 아이 오케이(You OK, I OK)”하거나 영어 철자도 모르면서 우리말로 “게라리(Get out of here)”, “홧스매러유 (What’s the matter with you)”, “샤답(Shut up)” 하면 우리 또래들끼리는 다 통했다. ‘오케이 미 미’는 상스러운 영어와 엉터리 영어를 내게 일찌감치 일깨워 준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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