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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노인의 자존감 외

연말기획:한인사회 소외된 노년의 삶 <10>

'한인사회 소외된 노년의 삶'. 본지는 11월부터 오늘까지 총 10회에 걸쳐 기획시리즈로 한인사회 어르신들을 삶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한 편에선 "우울한 이야기 쓰지마라"고 했고, 다른 한 편에선 "부모님과 내 미래를 생각게 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3개월에 걸쳐 취재해온 기자 2명의 소감을 들어본다.

지켜야 할 노인의 자존감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매번 나오는 단골 주제가 있다. '왕년의 활약'이다. 저마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과거의 날들이 있었다. 사업이 번창해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는 할아버지부터 남편보다 벌이가 좋았다던 할머니까지.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활약상을 너도나도 꺼냈다. 그러나 대화는 곧 씁쓸한 한숨으로 마무리됐다. 이제는 늙어버린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한 할머니는 "먹고살기 바쁜 아들에게 연락하면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데'라고 묻고 끊어버린다"고 말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었던 할머니는 자식에게 짐이 될까봐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이 무심코 내뱉는 무시하는 말투가 귓가를 맴돈다고 입을 모았다. 한때는 가정의 기둥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조용히 지내는 것이 도움이 되는 취급을 받고 있었다.



반백 년 가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부모, 또는 배우자로 살아온 노인들은 나이가 들자 자신의 역할이 소멸됐음을 느꼈다. 역할이 사라지자 자기 자신도 없어졌다. 너무 오랜 기간 헌신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20대 미혼 기자에게 눈을 반짝이며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는 어르신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과거를 회상하며 휘청거리는 자존감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은 100세 생일파티를 앞둔 어느 날 지루한 양로원의 창문을 열고 도망친다. 그는 100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모험을 즐기며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노인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으려면 다른 세대들이 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줘야 한다. 한때는 사회의 중심이었던 이들의 활약을 인정해주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한 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도 훗날 언제든 창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노인이고 싶다.

소외된 시니어에 대하여

아파트 출입문 앞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던 할머니 2명.

LA다운타운에 위치한 노인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봤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다. 5시쯤 취재원을 만나고 7시쯤 다시 아파트 문을 나설 때까지 두 노인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출입문이 열고 닫히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다림이 지겹지도 않은지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도 보였다.

한인 노년층은 한국 노인과 확실히 다르다. 돈 때문에 병원·약국에 가지 못할 걱정을 하기는커녕 너무 많은 공짜 약을 먹는 게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웰페어로 매월 약 800~900달러를 받고 노인아파트 주거비는 웰페어에서 1/3을 넘지 않는다. 올해 한국 국정감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65세 이상 1인 가구가 수령하는 기초생활보장 생계 급여 평균액은 매월 약 26만 원(약 240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환경과 제도가 미국의 한인 노년층을 소외로부터 구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병원을 일과처럼 드나들면서도 한국에 살던 시절 습관을 버리지 못해 수 많은 알약을 집어 삼키는 노년층, 웰페어 일부를 떼내 잘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에게 건네는 할머니, 홀로 살다 쓸쓸히 죽음을 맞는 할아버지가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이들은 매일 연장되는 삶보다도 다른 누군가, 특별히 자녀와 함께 하는 삶을 기다린다. 그러나 '잘 정돈된 노인 복지'라는 변명 아래, 홀로 아파트에 남겨진 노인을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출입문 앞에서 두 시간 여를 멍하니 보내고도 '기다릴 사람'이 있는 두 노인의 얼굴은 밝았다.

본지가 연말특집으로 다룬 '소외된 노년의 삶' 시리즈 한 기사에 "시니어들을 무슨 연탄 방 쪽방 늙은이에 고려장의 피해자로 묘사해놨군요. 연말이라고 언론에서 너무 오버하지 마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일견 맞다. 하지만 씁쓸했다. 분명 활기차고 멋진 할아버지, 건강하고 행복한 할머니도 많다. 그러나 아파트 너머 누군가와 닿길 바라며 소외된 채 살아가는 미국 땅 시니어는 어떤 면에서 한국의 노인보다도 더 외롭고 아프다.


정인아 기자·김지윤 기자 jung.in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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