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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하랍신다” 65세 김덕수 ‘신명’의 에너지, 광풍 일으키다

블루스·소울·록과 만난 사물
하늘로 오르는 소리에 가슴 쿵쾅
“연주하면 기운이…” 연 100회 너끈
“세계의 팝 되려면 창작 강화돼야”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화가인 안충기 기자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이 연재물의 열여덟 번째 주인공은 신명 김덕수(65)다. 농악을 실내 공연으로 탈바꿈시킨 ‘사물놀이’의 원조 잡이로 그 혼의 소리를 세계인에게 퍼트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남사당패에 입문한 지 60년을 맞은 그는 광대로서 걸판지게 한 생을 잘 놀다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장구채를 잡는다.


“둥 둥 둥기덕, 쿵 쿵 쿵다닥, 쿵 쿵 쿵다닥 쿵 더 덩, 더덕더덕더덕덕 야아~ 좋다! 얼씨구~떠덕.”

장구 네 대가 불을 내뿜는다. 사이에 들어선 키보드가 건반을 뒤집고 일렉트로닉 기타는 ‘지잉 지지잉’ 한바탕 떨며 운다. ‘김덕수의 일렉트릭 사물놀이’는 칼바람 매서운 추위를 날리며 객석을 뜨거운 바람으로 덥힌다. 하늘로 날아오르고 소리 따라 가슴은 쿵쾅거리고 머리는 저절로 끄덕거린다. 참을 수 없는 신명에 발을 구르던 관객 몇이 일어선다. 덩실덩실 어깨가 노를 젓더니 “그렇지, 좋을씨구!” 추임새가 절로 터진다. 소리 하나로 세상을 휘몰아치게 하는 사물(四物)의 힘이다. 꽹과리 지저대고 장구와 북 가락이 용솟음치니 작은 공간이 망망한 우주로 붕 뜨면서 광활한 소리 궁전 하나가 펼쳐진다. ‘세계를 뒤흔든 혼의 소리’라는 찬사를 들으며 한국 민속음악을 월드뮤직의 최고 위치에 올려놓은 바로 그 사물놀이(Samul Nori)다.



그 중심에 김덕수씨가 있다. 지난 9월 1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아트홀에 사물놀이 전용극장을 만든 그는 ‘세계로, 젊은이 속으로’ 새 길 내려 겨울 한복판을 후끈한 소리 하나로 누빈다. 그는 지금을 ‘사물놀이 4.0 시대’라 불렀다. 블루스, 소울, 록이 사물과 어우러지고 아들 손자뻘 ‘새끼 사물’이 그의 뒤를 받친다.

소리꾼 정승준(오른쪽)에게 '한의 느낌을 표현해 보라'고 주문하는 김덕수씨. 정재숙 기자
“내가 강하게 호흡을 잡아 주잖아. 퍼지지 말고 감아서 가자. 우리 소리는 한(恨)이야. 육자배기이건 흥타령이건 다 코리안 블루스지. 여운을 남겨야 돼. 멍하니 듣고 있지 말라는 거지.”

젖살 통통하던 다섯 살 아기가 백발성성한 예순다섯 장년이 됐다. 남사당 난장판에서 아저씨들 어깨 위에 올라타 무서운 줄 모르고 앉고 일어서며 물구나무서기를 했던 꼬맹이 덕수는 광대 된 지 60주년을 맞았다. 1957년 조치원에서 남사당의 난장축제가 벌어진 날, 그는 어머니의 흰 광목천을 목에 걸치고 우뚝 섰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미친 듯이 장구를 치고 버나를 돌렸다. 남사당패 일원으로 외국 순회공연을 다니며 우리 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그날까지 장구채를 놓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78년 서울 원서동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쇠·징·장구·북 4개의 타악기로 된 풍물패 ‘사물놀이’가 탄생했지요. 민속학자이신 심우성 선생이 사물 악기로 앉아서 연주하는 형식을 만들어 주시고 이름도 지어 주셨어요. 마당에서 하던 남사당놀이가 실내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공연으로 다시 태어난 거죠. 우리 신명의 뿌리가 어디 있느냐 찾던 시대정신이 충만하던 때였습니다. 내년이 40주년입니다. 제 데뷔 60년이야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 제쳐 버리고 그 초심을 다시 일으켜 2018년을 제대로 기념하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언론인이자 전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정남씨는 그에게 ‘신명’이란 호를 지어 줬다. 김 수석은 “사물놀이야말로 원조 한류요, 김덕수야말로 걸어 다니는 국보라고 말할 수 있다”며 광대 60주년을 축원하는 한마디를 건넸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살아 꿈틀거리게 하는 사물놀이의 그 신명이여, 세상 끝까지 하늘 끝까지 영원하라.”

김덕수씨는 키가 1m59㎝다. 남사당패로 살아가려 안 크려고 안 먹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진짜냐고 물었더니 “헛소문이여” 했다. 아버지는 잔칫집에서 소 한 마리 잡으면 간·육회 등 좋은 것만 골라내 그에게 먹였다. 그 공력 덕인가. 요즘도 연 100회 공연을 젊은 애들 헐떡거릴 때도 너끈히 해치운다.

“내가 왜 밀려, 힘인가, 내공이지. 장단 되면 벌떡 일어나는 거야. 사물놀이는 에너지 덩어리라 연주하고 있으면 온몸에 기운이 차올라요. 그게 젊음의 비결이지.”

그는 노동요고 잔치음악이고 다 되는 사물놀이가 자손만대 갈 거라는 걸 믿는다고 했다. 사물이 세계의 팝음악이 되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창작이 강화돼야 하고 스타 연주자가 나와야 한다는 쓴소리도 했다.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란 뜻의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국내외 추종자가 늘어나는 데 30여 년이 걸렸다. 미국에만 200여 개 사물놀이 커뮤니티가 활동하고, 사물놀이로 논문을 쓴 석·박사 교수가 수십 명이다.

“마흔 살이면 장년이죠. 사물놀이도 무르익었어요. 리듬 꼴이 길고 혼합박으로 둥글게 감아올리는 신명은 기마민족이자 농경사회가 혼합된 우리 핏줄에서 내리꽂히는 겁니다.”

그는 다시 음악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진격하랍신다” 한마디에 불덩이 같은 장구 4중주가 헤비메탈 저리가랄 광풍을 일으킨다. K팝의 새 이름, 21세기 사물놀이가 오고 있다.


어렵게 찾은 남사당 데뷔 영상 … ‘팽이’ 맞네


상모를 돌리며 소고와 장구를 치면서 뱅글뱅글 돌아치는 모습이 신묘하다. 2분 남짓 흑백 동영상 속에서 유난히 작은 키의 사내아이는 고꾸라질 듯 자빠질 듯 위태위태하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이 필름을 애타게 찾았는데 몇 년을 허탕 치다가 제자 하나가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자료실에서 극적으로 발견했어요. 제겐 보물이죠. 일곱 살 되던 해 남사당패 광대로 정식 입문한 순간을 찍은 건데 지금 민속박물관 자리에 있던 야외공연장 장면입니다. 1978년 작고한 선친 김문학과 제게 장구를 가르친 양도일 아저씨 등 남사당의 마지막 인물들이 다 나와요. 제가 얼마나 빨빨거리며 판을 누볐는지 숙선 누이가 ‘조그만 녀석이 팽이 같네’ 했다니까요.”

숙선 누이는 안숙선(68) 명창을 말한다. 세 살 차이인 안 명창과는 59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만났다. 당시 강도근 남원국악원장이 이끌고 나온 농악대에 속해 있던 안숙선은 하늘 같은 형과 누나 풍물패를 제치고 대통령상을 거머쥔 충청도 대표 김덕수에게 팽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다고 한다. 그 인연 덕이었을까. 사물놀이의 1대 소리꾼이 안숙선이었다.


김덕수
1952년 대전생.

다섯 살 때인 57년 조치원에서 새미(무동·어른 어깨나 머리 꼭대기에 서는 어린이)로 남사당패에 입문한 뒤 60년을 광대로 살아온 한국 예인의 대명사.

78년 ‘사물놀이’를 결성한 뒤 우리 전통예술의 세계화를 위해 공연과 교육, 두 방향으로 신명을 바쳐 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사물놀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연구소가 뽑은 20세기 고전 전통예술 분야에서 1위로 선정됐다.

2007년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은관문화훈장, KBS 국악대상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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