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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수레바퀴 아래서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2/18 14:39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하게 하는 12월이다. 별일 없이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위안해야 하는 건가, 세웠던 목표 고스란히 다음 해로 떠안고 가야 하는 자신을 원망해야 하는 건가. 왜 꼭 이맘때가 되면 자괴감이 밀려드는지 모르겠다. 지난 열 한 달 내내 평온했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사진)가 떠오른다. 수레바퀴 밑으로 밀어 넣는 사회에 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한 청소년 한스는 전형적인 실패한 수재다. 마을에서 똑똑하기로 이름난 한스는 최고 명문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그곳의 과도한 경쟁과 권위적인 교육을 못 견디고 우울증에 걸린 채 마을로 돌아온다. 이후 공장 대장장이 견습공이 된 한스는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수레바퀴 궤도에서 이탈한 그는 ‘신학교에 다녔던 대장장이’일 뿐이었다. 그동안 공부에 흘린 숱한 땀과 눈물, 억눌러야 했던 자그마한 기쁨들, 자부심과 공명심, 그리고 희망에 넘치는 꿈도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한스의 장래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 지역에서는 부모가 부유하지 않을 경우 재능있는 아이들 앞에 단 하나의 좁은 길만이 놓여있었다. 그 길은 주(州) 시험에 합격해 신학교에 입학한 뒤, 거기서 다시 수도원에 들어가고, 나중에 목사가 되어 설교단에 서거나 아니면 대학의 강단에 서는 것이었다. 한스의 운명은 자신이 뜻하는 대로가 아닌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권위 있는 사람들이 닦아 놓은 ‘좁은 길’로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스 또한 그 좁은 길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끼 기르기, 낚시하기, 산책하기를 제치고 공부에 전념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자랑거리가 될 일에 우쭐했다. 동네 철공소나 치즈가게에서 일하게 될 그저 그런 친구들을 내려다보게 될 거라는 꿈도 꿨다. 하지만 조금만 한눈팔면 수레바퀴 밑으로 깔리게 되는 신학교의 경쟁 체제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신학교를 포기하고 마을로 돌아와서도 한스는 한동안 괴로웠다.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힘들었고, 평소 미천하게 생각했던 노동자의 삶을 자신이 살게 됐다는 사실도 절망적이었다. 결국 한스는 어느 날 물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것이 자살인지, 실족사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마을의 고루한 신사 양반들이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줬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헤르만 헤세 역시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다 퇴학당한다.한스처럼 마을로 돌아와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소설 속 한스는 헤르만 헤세의 분신이었다. 다만 한스는 우울한 청소년기를 자살로 마감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썼을 당시 헤세는 29살이었다. 대중에서 더 많이 알려진 <데미안>을 놔두고 13년 일찍 발표된 그의 초창기 소설을 대표작이라 꼽는 이유는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인 이유가 크다.

19세기 독일 풍경이 어쩐지 21세기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인다. 경쟁에서 밀려나 수레바퀴 아래 깔릴까 두려움에 떠는 게 어디 한스 뿐이랴. 낭창낭창한 젊은이들이 그 나이 특유의 싱그러움을 잃고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입시 지옥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해도 취업, 대출, 승진, 노후 지옥이 줄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 속 주인공 한스는 규격화된 제도 속에서 기성세대의 압박을 온몸으로 받고 자라난 오늘날 우리인지도 모르겠다.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가며 한 해를 달려온 우리 모두에게 헤르만 헤세의 말을 전한다. “선생과 학생 중 누가 상대를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상대의 인생과 영혼에 누가 더 상처를 입히는가.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그 누구도 분노와 수치심 없이 어린 시절을 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끔찍한 소년기를 보낸 헤르만 헤세가 자살 충동을 못 이겨 소설 속 한스처럼 생을 마감했다면 아름다운 소설도, 노벨 문학상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경험이 오히려 20세기 초 독일의 ‘기숙학교 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소영/언론인, V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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