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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스쿠르지의 '바 험버그'

"선생님, 기본적인 생활도 힘겨운 이들이 수만 명에 이릅니다." 자선단체 직원들이 찾아와 기부를 요청하지만 노인은 모진말로 거절한다.

"구호소로 보내면 되겠네." 그래도 이 영감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쓴다. "그곳에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가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쏘아 붙인다. "죽는 게 낫겠다면 그렇게들 하라고 하세요. 남아도는 인구도 줄이고 좋구먼."

그는 누구일까. 매년 이맘 때 쯤이면 누구나 한 번 쯤 떠올리게 되는 소설 속의 캐릭터.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쿠르지다. 출판된 지 170년이 넘었는데도 인종과 국적, 종교를 떠나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명작이다. 이유가 대체 뭐길래.

소설이 스쿠르지의 '본 어게인'을 담아냈다고만 알고 있으면 너무 단순한 이해일 터. 작가는 당시 가진 자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스쿠르지의 입을 빌려 통렬하게 꾸짖었다.



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책무, 곧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면하는 자들에 한 방을 날렸으니 그 통쾌함이란.

배경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 최전성기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번영을 누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비참했다. 스쿠르지로 대표되는 부자들은 분배와 복지가 나라를 망친다며 반발하고. 오죽했으면 디킨스가 스쿠르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싶다.

책이 나온 때는 1843년. 세계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나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세상에~. 그 무렵 '아편전쟁'이 터졌지 않은가. 당시 영국의 부자들은 청나라에서 수입한 차의 우아한 향과 신비스런 맛에 푹 빠졌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중국과의 결제수단은 원래 은이었는데 이 귀한 금속을 주기 아까웠다. 여기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아편. 인도에서 재배한 것을 중국에 몰래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 돈으로 차를 수입한 것이다. 은을 아편으로 바꿔치기 했다고 해야할지.

이 바람에 수백만 명이 중독돼 대륙은 황폐화의 길을 걷게 된다. 급기야 청이 아편금지령을 내려 전쟁이 터졌는데. 결과는 뻔했다. 청군 20만 명이 1만 명도 채 안 되는 영국군에 박살이 났다. 아편수출에 걸림돌이 없어지고 전리품으로 홍콩까지 손에 넣고.

영국은 이처럼 인류 역사 상 유례없는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켰다. '신사의 나라'라면서. 이후 서구열강들이 중국을 이리 뺏고 저리 찢어 대륙은 거덜나고 말았다. 얼마나 치욕적이었으면 시진핑의 '중국몽(차이나 드림)' 캐치프레이즈가 '아편전쟁을 잊지 말자'가 됐을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돈이 된다면 마약이건 뭐건 가리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스쿠르지와 같은 인간들이 어디 하나 둘이었겠는가. 윤리도덕이 실종된 사회인데 종교라고 성할리 없겠다.

조카가 성탄절 이브에 인사를 건넨다. "삼촌, 메리 크리스마스!" 스쿠르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내뱉는다. "바 험버그(Ba Humbug)." 꼭 주술사가 외우는 주문처럼 들린다. '흥, 무슨 허튼소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12월이 가까워오면 '크리스마스가 싫다'는 의미로도 흔히 쓰인다.

뉴욕 증시가 연일 최고점을 찍으며 경제도 근래 보기 드문 호황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엊그제 같은데. 디킨스가 살았던 시대가 요즘 같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유령들과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 스쿠르지. 소설 끝자락에 이 자린고비는 가난한 아이들에 푸짐한 밥상을 차려준다.

그의 입에선 '바 험버그' 대신 '메리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오고. '돈=우상'의 등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박용필 /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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