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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기억(記憶) -임창현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2/21 07:02

못내 그리웠던 안부,
박남수 선생 만났네.
고목(古木) 허리, 사슴 다리
꿈에도 깨끗이 늙고 있었네.
살아서도 키 컸던 시인, 큰
나무 곁에 나무 되어 서 있었네.
머리는 사슴의 관(冠) 되었네.
깊은 그의 눈 속 새들 집 짓고
당뇨를 누르는 데는 두부가 좋다는데
식당 아저씨 또 달게 해
갈비탕 국물만 마시고 나왔네.
공항 출구에서 사라지는 모습,
다시 돌아보는 사슴의 다리,
마른 등 휑한 눈,
나도 사슴 되고 있었네.


내일 모레 저럴까 나도
이슬 맺혀오는 선생님의 눈,
나도 그렇게 거기 함께 오래 서 있었네.


우리들은 꿈에서도 생시처럼
이별을 했네.

꿈이었다. 꿈을 꾼 것이다. 소망도 증오도 슬픔도 기쁨도 더러는 꿈으로 오고 간다. 레이건 내셔널 에어포트의 출구를 빠져나가던 스승의 모습을 만난 것이다. 생시에도 나무처럼 키 크셨던 그가 꿈에도 키 큰 나무 곁에 서 계셨다. 몇 년쯤은 더 가까이 뫼시다 헤어지고 싶었는데 그리 못해 화자는 꿈속에도 더러 만나게 되나보다. 꿈 속 시집의 소로(小路)를 걷던 사슴의 관 같은 머리와 새 같은 다리, 깊이 팬 눈 속, 새들이 울고 있었다.

선생님은 새의 시인이었다. 화자의 시 새에도 한줄 더 보태주셨다. 진한 기억, 그 고마움 다시 환생한 것일까. 생전에 실제 있었던 사실이 필름처럼 재생되어지는 꿈, 꿈은 인간의 블랙박스다. 살아 꿈꿀 수 있는 동안 꺼내볼 수 있는. 미련 때문이리라. 시인도 거기 오래 서 있었다. 꿈속에도. 워싱턴에서 가시던 그날 공항 출구에서의 어쩐지 마지막일 것만 같은 헤설프던 모습, 아직도 화자에게 아리게 남아있음에랴.

선생님 그립다. 참 깨끗한 시인이셨다. 더 자주, 더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 못내 마음 아프다. 자살한 헤밍웨이보다 객사한 에드가 알란포우 보다 더 외로운 삶 살다 가셨다. 상배한 자신도 혼자, 아들도, 출가했던 딸도 혼자 돌아와 모두 혼자들이 되었던 가족, 그렇게 살았던 시인의 집, 한 후학의 설운 기억모퉁이에 남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미련 남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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