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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공감과 소통. 소중한 그 단어가 식상하게 쓰이다 보니 오히려 공허하게 울려 퍼집니다. 공감하고 소통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큰 배신감과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연초에 화제였던 인터넷 만화가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힘내라는 책임감 없는 말로 응원 같지도 않은 응원 하지 마세요/ 안아 주고 같이 울어 주지도 마세요/ 고기랑 돈을 줘요." 공허한 위로가 횡행하는 세상에 이렇게 마음에 쏙 와 닿는 재치 있는 명언이 있다니!

때로는 말뿐인 소통과 공감보다는 고기와 돈이 더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위로의 행동은 상대방을 위하는 진심 없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칸트의 표현을 응용하자면 '행동 없는 공감은 공허하고 공감 없는 행동은 맹목적이다!' 그 둘의 관계는 순환적이라 공감이 선행을 높이고 다시 선행이 공감 능력을 높입니다. 공감과 행동은 떨어질 수 없으며 강하게 말하자면 타인을 위한 실천 없는 공감이란 없습니다.

요즘 행복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덴마크. 덴마크의 행복 원인에 대해 어떤 이들은 잘 갖춰진 사회복지 시스템을, 또 어떤 이들은 덴마크 고유문화 개념인 '휘게(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를 강조하는데 저는 그들의 공감교육에 주목합니다. 정규 수업 과정 속에 10년 동안 공감 능력을 높이기 위해 친구들의 감정을 익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타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커리큘럼화함으로써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실제로 체험하며 배려하는 행동을 훈련합니다.



아리아나 허핑턴의 '제3의 성공'이나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에서도 소개된 '공감의 뿌리(Roots for Empathy)'라는 사회적 기업이 있습니다. 아쇼카재단 회원인 메리 고든이 만든 이 공감의 뿌리는 어린이들에게 공감 능력과 정서 이해력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됐는데 공감은 이론으로 가르쳐지는 게 아니라 부모의 행동이 본보기가 됨으로써 아이들에게 가르쳐진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감의 본보기를 보여 주지 않는 부모의 아이는 공감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메리 고든은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조차 처음 아기를 안아 보는 행동을 통해 따뜻한 애정을 경험하며 아기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고, 아이 역시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아기에게 전해 줬습니다.

단 한 명의 불편한 사람만 있어도 힘들던 어린 시절이 있었건만 어느덧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는 나이가 됐습니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묵묵히 공감하며 신뢰해 주는 친구.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성급하게 비판과 조언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알고 있는 잘못을 해결할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서 격려하는 한 사람의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2017년 한 해가 지나고 있습니다. 기쁨과 보람도 있었지만 후회와 아쉬움도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일도 가득하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공감해 줄 벗이 하나만 있다면 살아갈 만한 세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전에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돼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연말이라는 시간은 그 한마디를 전해 줄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일 년 동안 각자의 사정을 감내하며 열심히 살아온 모든 분께 듀오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띄웁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올 한 해도.


송인한 /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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