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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나를 진맥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7/12/28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7/12/27 18:08

한의학 공부한 것을 계기로 건강 이론과 사회 이슈, 또는 인생이란 문제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겉만 다스리는 대증 치료에서 벗어나 참건강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끝에 '진맥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써왔습니다. 진맥은 병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이면은 무엇인지, 사회를 골병들게 하는 이면은 무엇인지,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이면은 무엇인지 짚어 왔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병'을 진맥하고 처방한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나를 진맥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를 곪게 했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올해를 끝으로 도려내야할 악성 종양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맥하려 합니다.

내년부터는 '바빠'라는 단어를 잊으려 합니다. 올해도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를 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진 것은 무엇인지 내 손에는 별로 남은 게 없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결국은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숱하게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 다음 주말에 하면서 결국은 집안 정리 제대로 한번 못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읽자, 하며 사모은 책이 읽은 책보다 10배는 많은 것 같습니다. 책장을 보며 '죽을 때까지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회의까지 듭니다.

바쁘다는 것은 실제 상황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인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자기 최면은 시간을 내기 싫다는 핑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쁠 게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내뱉은 바쁘다는 말에 상대방이 느꼈을 소외감이나 섭섭함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년부터는 죽었다 깨어나도 바쁘다는 소리를 안 할 작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한 것이 너무 많은 올해가 원망스럽습니다.

'난 몰라'라는 말도 버리려 합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는 말은 참으로 편리한 말입니다. 그 한마디만 하면 나는 완전히 분리되어 홀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편리성 때문에 숱하게도 모른다, 관심 없다를 남발한 것 같습니다. 잠깐은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단절의 욕구 때문에 나는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모른다, 관심 없다며 선을 긋는 바람에 나의 뇌는 지식의 습득을 멈추고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무관심 때문에 또한 상처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따름입니다. 내년부터는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고, 관심이 없다면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더 열어 관심을 가지려 합니다. 그것이 커뮤니티로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못한다'는 말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사실 올해도 못한다고 했다가 해보니까 의외로 쉽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수년째 삐걱거리는 욕실 여닫이 문을 단돈 2달러 들여 작은 도르레 하나 바꿔 고쳤습니다. 고장난 싱크대 음식분쇄기도 직접 해보니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수년째 망설였던 칼럼집 발간도 왈칵 저질러보니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엄두를 내지 못 하던 것들이었지만 막상 소매를 걷어붙이니 불가능해 보인 것들이 가능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 정주영 회장의 "하기는 해봤어?"란 명언이 떠오릅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라면 못한다 하기 전에 일단 해보려합니다. 할까말까 하는 것에 대해선 절대 못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작정입니다.

바빠, 몰라, 못해 이 세마디 올해의 종양을 잘라내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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