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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소확행'

12월은 밤이 길어 책읽기도 좋다. 겨울밤엔 심각한 책보다는 잔잔한 소설이나 수필이 제격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새로 올 한해를 준비할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글이라면 더욱 좋겠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젊은 날 썼던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서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의 하나다.' 하루키는 이를 줄여 소확행(小確幸)이라 했다.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도 하루키가 즐거워하는 소확행의 순간들이다.

시인 장석주도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라는 산문집에서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들을 곳곳에 적어놓았다. '해마다 봄철 나무시장에 나가 여러 나무들을 사다 심은 것, 모란과 작약이 꽃피기를 기다린 것, 초겨울 밤하늘에서 쏜살같이 흘러가는 유성우를 바라본 것' 등이 그런 것이다. 아침마다 사과 하나를 깨물어 먹고, 두 끼니 이상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두 다리를 뻗고 단잠을 자는 것 역시 시인이 누리는 소확행들이다. 이런 것들이 어디 유명 작가들만의 특권일까.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찾아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은 있을 것이다.

시절도 하수상한데 뜬금없이 웬 행복타령이냐 묻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이 별건가. 세계평화도 중요하고 민족통일도 논해야겠지만 요즘 같은 연말엔 한 번쯤 개인의 일상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인용해 보았다. 어차피 갑남을녀 민초들에겐 거창한 담론보다는 생활 속 자잘한 이야기들이 더 간절하고 소중한 법이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때 우리 사회도 더 밝고 건강해질 거니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소확행'이란 단어를 접하게 된 것은 나로서도 행운이었다. 행복은 요란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작고 단순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 발견하는 것임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더러는 미로를 헤매기도 했고 때론 진흙탕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소확행의 순간들이 있어 더 깊이 빠지지 않고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항상 쫓기듯 바쁘고 여유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수시로 책을 읽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마음 선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가끔은 여행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대단한 소확행이었다. 감사 또 감사!

개인적으로는 50세가 넘고부터는 새해를 맞아도 별로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대신 작년보다 조금만 더 착하게 살자,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정도의 다짐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열어 좀 더 많은 '소확행'을 찾아보자는 다짐까지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이제 올해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쯤이면 저마다 지난 1년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쉬워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할 것이다.

바라기는 어느 쪽에 속하든 지나간 시간에 더 이상 연연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서 그래도 실족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 온 것만으로도 모두가 대단했기에 그렇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런 나를 다독이며 박수 쳐 주며 남은 한 해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지난 한 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하고 격려해준 우리 독자, 광고주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며 새해에는 더많은 '소확행'의 시간들로 채워지시기를 기원드린다. 아듀, 2017년!


이종호 OC본부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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