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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두 여인 빙판 추격전, 세계가 숨죽인다

평창 올림픽 라이벌 열전

빠르게 따라붙는 '여제' 이상화
올림픽 2연패 했지만 부상에 주춤
지난해 막판 전성기 기량 보여줘
고다이라와 격차 0.21초로 단축

치고나간 '성난 고양이' 고다이라
네덜란드 유학 후 뒤늦게 급성장
월드컵 7차례 석권, 단거리 최강


1000m 세계기록 세워 2관왕 꿈

라이벌(rival).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겨루는 맞수를 말한다. 라이벌의 존재는 선수에겐 자극이 되고, 팬들에겐 흥미로운 관전요소가 된다. 2월 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많은 라이벌들이 불꽃 튀기는 대결을 벌인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맞수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스케이터, 이상화(29·스포츠토토)와 고다이라 나오(32·일본)다.

"그 선수는요…." "그 친구가 있어서…."

'빙속 여제' 이상화는 고다이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고다이라를 라이벌이라고 여기는가"라는 질문에도 "내 라이벌은 나 자신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미 올림픽 2연패(連覇)를 달성한 이상화다.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고다이라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세계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했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기록은 이상화가 세운 36초36(2013년 11월)이다. 사실상 이상화를 넘어서고 싶다는 뜻이다. 고다이라는 지난 12월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개인 최고인 36초50을 기록했지만, 이상화의 기록은 넘지 못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 2월 18일,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 열리는 여자 500m 경기에선 빙속 여제의 자리를 놓고 맞붙는다. 지난해 9차례 대결에선 이상화가 고다이라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강릉에서 애국가를 울리려는 이상화의 꿈이 이뤄지려면 고다이라를 넘어야 한다.

고다이라는 이상화보다 나이가 세 살 많다. 자연히 이상화가 2004년 태극마크를 단 뒤 자주 만났다. 둘은 레이스를 마치면 손을 맞잡을 정도로 친분도 있다. 그러나 승자는 언제나 이상화였다. 이상화가 첫 번째 금메달을 따낸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고다이라는 12위에 그쳤다. 4년 뒤 소치 대회에서 이상화가 두 번째 금메달을 따냈을 때도 고다이라는 5위에 머물렀다. 이상화가 5~6년간 수많은 라이벌을 꺾고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켰지만 고다이라는 경쟁자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랬던 고다이라가 달라졌다. 고다이라는 2016~17시즌 월드컵 시리즈 500m에서 여섯 차례나 우승했다. 지난해 평창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강릉 세계선수권과 삿포로 겨울 아시안게임에서도 이상화를 제치고 우승했다. 고다이라의 상승세는 '올림픽 시즌'에도 이어졌다. 2017~18시즌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7차례 모두 우승했다. 올시즌 월드컵 랭킹 1, 2위인 둘은 무려 여섯 번이나 함께 달렸는데 항상 고다이라가 이겼다. 지난달 11일 1000m 세계기록을 세운 고다이라는 내친김에 올림픽 2관왕까지 넘보고 있다.

고다이라가 10년 만에 이상화를 따라잡은 건 도전정신 덕분이다. 고다이라는 소치 올림픽 이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엔 1년으로 계획했지만 2년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현지 음식을 먹다 고생하기도 했다. 고다이라는 "직접 운전을 하고 쌀과 된장도 내가 직접 샀다. 힘들었지만 네덜란드 훈련법을 익혀 내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1998 나가노 올림픽 2관왕(1000m, 1500m) 마리안느 팀머(43·네덜란드) 코치의 지도를 받은 고다이라는 주법에 변화를 줬다. 예전엔 허리와 머리를 낮춰 달렸지만 '성난 고양이'처럼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세워 달렸다. 서른 살이 된 2016년부터 고다이라는 단거리 최강자로 올라섰다.

고다이라가 정상에 오른 사이 이상화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부상 때문이다. 가장 오래 아팠던 부위는 무릎이다. 2010년 소치 올림픽 때부터 아팠다. 연골과 연골판이 손상돼 윤활유 역할을 하는 활액이 차올랐고, 그래서 무릎 관절이 퉁퉁 붓는다. 이상화는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고, 꾸준한 노력으로 부상을 이겨냈다. 그런데 3년 전부턴 하지정맥류가 이상화를 괴롭혔다. 2016~17시즌 내내 종아리 통증에 시달렸고, 지난해엔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기도 했다. 이상화는 "종아리가 너무 아파 무릎이 아픈 건 모를 정도였다. 스타트 때 다리가 제대로 안 움직였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이상화는 다시 일어섰다. 지난해 3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뒤 통증이 줄어들었다. 훈련량도 다시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기량은 향상됐다. 이상화는 지난 10월 대표선발전을 치른 뒤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몸 상태를 끌어올린 뒤 3,4차 대회에선 36초 중후반대 기록을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이상화는 4차 대회에서 36초71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다. 1초 가까이 났던 고다이라와 격차도 0.2초까지 줄었다.

아웃코스에 대한 압박도 이겨내고 있다. 코너를 돌 때 선수들은 체중의 3배 가까운 중력을 받는다. 스타트 때 아웃코스를 배정받으면 부담이 더 크다. 속도가 정점에 오른 채 돌입하는 마지막 코너에서 원심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릎 부상이 있는 이상화는 인코스를 선호한다. 공교롭게도 올시즌 이상화는 고다이라와 승부를 펼칠 때 모두 아웃코스에 배정됐다. 이상화는 "아무래도 인코스가 편한데 올해는 유독 아웃코스를 배정받았다. 좋은 연습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소치 올림픽부터 호흡을 맞추고 있는 케빈 크로켓 코치가 캐나다 대표팀도 지도하고 있어 강릉 경기장에서 함께 훈련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의 기록만 놓고 보면 객관적으로 평창올림픽에서 이상화가 고다이라를 꺾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러나 이상화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100m 기록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막판 스퍼트가 좋은 고다이라를 이기려면 스타트에서 격차를 벌려야만 승산이 있다. 이상화가 세계기록을 세울 당시 스타트 기록은 10초09였다. 그러나 지난해 10.4초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10초26까지 빨라졌다. 이상화는 "세계기록을 세웠을 때처럼 10.0초대는 어렵지만 10.1초대까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올림픽 경기 방식이 바뀐 것도 이상화에겐 좋은 소식이다. 500m는 소치 대회까지 1,2차 레이스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가렸다. 하지만 이번엔 단판 승부로 펼쳐진다. '추격자' 입장인 이상화로선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3연패를 이룬 선수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92·94년, 여자 500m),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1994·98·2002년, 여자 5000m) 뿐이다. 이상화는 평창 올림픽에서 3번째 3연패에 도전한다. 이상화는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나의 레이스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화의 눈은 시상대 맨 위를 향해 있다. 크리스마스에도 휴일을 반납하고 훈련에 매진한 게 그 증거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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