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160> 북미 식민사 26-북해 해전7

무적함대의 패배로 휄리뻬 2세의 유럽 제패의 꿈은 물건너갔고 에스빠냐 제국을 지탱하는 힘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무적함대의 패배 소식을 전해 듣고 휄리뻬 2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절규했다.

"적과 싸우라고 함선을 보냈지 누가 자연과 싸우라고 했나?"

휄리뻬 2세는 무적함대가 패퇴한 10년 뒤인 1598년 한을 품은 채 죽고 그때부터 에스빠냐 제국의 황혼이 서서히 시작된다. 무적함대 해전은 범선에 대포를 장착한 최초의 대규모 해전이었고 이후 이러한 전함들이 대서양을 지배하게 된다.

무적함대의 패배가 에스빠냐인들에게 준 충격은 엄청났다. 그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동안 멍해 있었고 그들이 패배의 완전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지난 100년 동안의 경이적인 성취에 기인한 에스빠냐인들의 경솔한 낙관주의는 이 패배로 인하여 거의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에스빠냐의 거칠 것 없어 보이던 질주에 제동이 걸리고 승리를 만끽하던 환상에서 깨어난 해가 바로 1588년인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에스빠냐 함대는 놀라운 속도로 원정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했고 머지않아 전보다 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에스빠냐 융성시대의 마지막 왕으로 40년 간이나 에스빠냐를 통치한 휄리뻬 2세는 작은 체격에 목소리도 아주 가라앉았으며 많은 양의 왕국 문서를 읽느라 눈은 늘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결코 웃는 법이 없었는데 설사 웃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차갑게 얼어붙은 웃음이었다. 그의 시선은 반은 꿈꾸는 듯했고 반은 냉혹하게 보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서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로 자처했으나 결국 영국에 패배함으로써 가톨릭은 유럽에서 세를 잃게 되었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중앙교육문화센터 스패니시 강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