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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90 고개에서도 빛나는 생명

수잔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수잔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LA중앙일보] 발행 2018/01/09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1/08 19:22

구십 고개는 아리랑 고개보다 높고 험준한 산길인가 보다. 90이 되신 어머니는 호흡곤란 증세로 다섯 번이나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을 하셨었다.

평안남도 개천은 어머니와 내가 모두 태어난 곳이다. 세 살 때 홍역을 앓은 후, 합병증으로 온 천식과 만성 기관지염을 어머니는 일생 동안 앓으시면서도 89세가 될 때까지 몸져누워 앓으실 여유가 없으셨다. 한 살짜리 큰딸인 나를 업고 혼자서 이남으로 피난 오셨다가, 두 살 밑의 여동생과 셋이서 배로 6·25를 피하셨고 1·4 후퇴 때 중공군을 피해 눈 쌓인 산골길을 걸어서 들어간 공주 피난소에서 할머니를 잃으셨다.

죽어서 썩을 몸 아껴서 무엇하니를 우리 네 자녀에게 조용히 일러주시며, 전쟁 후의 가난 속에서 네 자녀 모두 대학교육을 시켜주셨다. 아버지의 건축업을 도와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지어서 재빨리 팔아치우셨다. 내가 의과대학을 가도록 마련해 주셨던 스코필드 박사님의 장학금도 더욱 도움이 필요한 다른 학생에게 양보하도록 주선한 것도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많이 웃으셨다. 안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었다.

38살 된 나의 막내가 태어났을 때 미국에 오신 후 어머니가 든든하게 옆에 계셨기에 나는 삶이 별로 어렵거나 겁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모든 일이 잘될 거야, 그렇게 애썼는데 안될 일이 없지라며 완전히 믿어주셨다.

정신과 의사를 하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는 환자도 있다.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하다 보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라는 충고를 해주셨는데 이것은 소아정신과 의사 스텔라 체스의 자녀 양육 이론과도 일치하는 듯했다.

90은 넘어야 하는 산소의 혈중 농도가 86 밑으로 떨어진 어머니를 발견해서 기적적으로 구해낸 것은 어머니의 친한 친구, 천사 사모님이다. 의사나 간호사 딸들이나 두 아들들은 몰랐었다. 이제 어머니는 천식 재발을 막기 위해서 스테로이드 약품을 매일 드시며 필요하면 의사와 상의하셔서 용량을 올릴 줄도 아신다. 당뇨증상을 막기 위해서는 인슐린 주사도 손수 놓으신다. 두 가지의 당뇨병 치료제를 잊지 않고 복용하신다. 아침 직전과 취침 전에 혈당을 재고 반드시 기록하셨다가 의사를 만나는 날 챙겨 가신다. 숨이 가빠지면 산소통을 끌어다가 코를 통해서 100%의 산소를 흡입하신다. 혈압 치료약 두 가지, 관절통약, 천식약 두 가지, 최근에 첨가된 이뇨제 두 가지를 시간에 맞추어서 꼭꼭 드시며 전혀 불평하지 않으신다. 담당 의사들을 믿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를 되뇌는 많은 노인 환자들과 달리 어머니는 손자와 손녀가 모두 결혼할 때까지 살아야 되니 적어도 3년은 더 살아야겠지라고 말씀하셔서 우리를 기쁘게 만드신다. 아무래도 내 아들과 동생 딸의 결혼을 서두르지 말아야겠다. 육체의 온갖 고통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어머니의 생명의 풍요로움과 삶의 지혜를 좀 더 음미하며 배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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