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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평창으로 가는 길

"길만 좀 닦아놨어도." 아프리카, 그것도 '오지 중의 오지'라는 차드 공화국을 간다는데 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벌써 팔순을 넘겼는데.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단지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도로사정이 열악한 것만 빼곤 괜찮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저기 움푹 팬 길을 반나절 넘게 달리다 보면 심장마저 덜컹거릴 텐데도.

목사님은 2월 말쯤 소망소사이어티의 봉사자들과 함께 차드를 간다. 원주민들에게 생명수나 다름없는 우물을 파주기 위해서다. 차드는 원래 프랑스 식민지다. 목사님에 따르면 공장은커녕 길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아 21세기인데도 마치 원시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곳이다. 서구 열강들이 어떻게 착취와 수탈을 했는지 실감을 한다며 혀를 찼다.

길이 역사의 도마 위에 처음 오른 것은 90년대 말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이슬람 주민들을 인종청소 하는 참상이 불거졌을 때다. 미국의 네트워크 TV 방송들이 정교회 민병대원들의 만행을 카메라로 잡아 전 세계에 생중계하듯 고발하지 않았는가.

비슷한 시기, 아프리카에서도 수십만 명의 양민들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현장을 취재한 미국 방송국은 거의 없었다. 인종차별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시 NBC 보도담당 제작자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코소보엔 길이 있는데 아프리카엔 없어요. 중계차량이 진입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유럽엔 옛 로마제국이 닦아놓은 도로가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얼마나 단단하고, 잘 만들었길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옛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닐지 싶다. 정보와 물자가 이 길을 통해 로마에 집중됐고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된 것도 로마의 길이 큰 힘이 됐다.

일찍이 전대미문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 그 나라에 이런 격언이 전해진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 성을 짓는다는 것은 폐쇄와 불통, 반면 길을 닦아내는 것은 개방과 소통이다. 인구 고작 100만~200만 명의 유목민들이 중국과 이슬람, 유럽을 150년이나 통치했으니 길이 갖는 정치 문화적 함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

미국의 국보 1호를 꼽으라면 단연 고속도로다. 있을지도 모를 소련의 핵 공격에 대비해 전국에 고속도로를 그물망처럼 깔아놨다. 경보가 울리면 즉각 대피할 수 있게. 그래서 프리웨이 표지판이 방패(shield) 모양으로 생겼다. 옛 로마 군단의 아이콘, 바로 그 '쉴드'다.

16년 넘게 걸린다는 길을 2년 반 만에 뚝딱 해치운 나라. 개발독재 시절,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로 꼽히는 경부고속도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길을 터 풍요한 사회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체제 선전에 열을 올렸는데 정말 그대로 이뤄졌다.

요즘은 평창으로 향하는 길이 단연 화제다. 북한이 겨울올림픽에 역대급 규모의 방문단을 파견한다고 해서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내려오는 게 유력하게 검토된다. 북쪽에 그 길이 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남북관계의 답은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측 대표도 '왕래의 길'을 열어 놓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핵에 돈과 인력을 쏟아부은 탓에 길이 차드보다 더 열악할 것만 같다.

같은 최빈국이라도 차드가 북한보단 오히려 선진국이다. 1인당 소득이 차드(2600달러)가 두 배나 높다.

이제 남북관계의 모든 길은 평창으로 통하게 돼 있다. 길을 내야 나라가 흥하지, DMZ에 성곽을 쌓아 올리면 망하는 지름길이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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