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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살 빼기 결심이 불러온 혼란

새해가 되자, 옛 모습을 찾고 싶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몸이 군더더기 살들로 이상하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욕구 불만인지 절제 못 한 과식 때문인지, 그것들은 보기 흉하게 팽창되고 늘어진 채 굳어가고 있었다.

본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쌀밥을 끊고 나물과 생선의 고단백으로 대치하기로 했다.

한동안 생선과 샐러드, 과일 식사로 나의 몸은 새롭게 태어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알 수 없는 불만이 버섯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몸이 가늘어진 만큼 혼이 활기를 잃고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먹고픈 것을 맘껏 못 먹은 욕구 불만은 삶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렸나 보다. 낙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가슴 어디선가 인생의 의미조차 흔들었다. 원초적 배고픔으로 삶의 행복 만족도가 갈등을 일으키자 영혼은 지진의 진동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짐 한 모퉁이의 따뜻한 스파에 중년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비만으로 부풀고 주름 접힌 배를 그윽이 내밀고 있었다. 여인은 푸근한 몸매만큼이나 여유 있게 삶을 음미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흉하게 주름진 그녀의 뱃살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울퉁불퉁 살찌고 주름진 살들은, 사람들의 삶을 닮은 것도 같다. 알 수 없는 방황과 끊임없는 갈등으로 이상하게 부풀기도 하고 시행착오와 착각으로 인해 주름진 삶은, 어쩌면 그녀의 뱃살보다 더 기형적이고 불균형으로 교차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런 이유로 유명 화가들은 살지고 늘어진 여인의 나체를 통해 삶의 모습과 인생을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엔 자연의 냄새와 소박함이 묻어 있기 때문일 듯싶다. 사람들은 풍만하게 붙은 살에서 순수한 인간의 냄새를 맡으며 너그러워지고 원초적인 모성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매끄러운 이론에서보다, 엉성하지만 분별없이 받아들여지는 푸근함 속에서 더 편안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젖먹이 아기가 어미의 냄새와 품에서 사랑과 연민을 배우듯 사람들 사이의 살의 접촉은 지극히 순수한 자연의 몸짓일 것 같다.

처음 보는 이들의 손과 손의 접촉, 반가운 해후에 몸의 부딪침은 새로운 영혼과의 만남이다. 인식과 가식을 벗고 언어를 뛰어넘은 너와 나의 살의 만남은 또 하나의 새로움을 만들고, 그때마다 창조되는 영혼의 만남은 새 생명을 창조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필요 이상의 넉넉함을 취할 가슴의 풍요와 여유가 삶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절제된 삶을 간절히 추구하다가도 불현듯 삶의 여유를 즐기며 안주하고 싶은 나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살'의 정의에서 매번 방황만 한다. 동물적 본능과 건강의 원칙 이론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 절실하게 고민하는 동안 새해의 결심은 흔들리고, 나의 뱃살은 늘어만 간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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