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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상처, 다 풀고 떠나야 좋은 죽음"

'존엄사 전도사' 허대석 교수

연간 5만 명 중환자실서 숨져
가족들도 임종 못 지키고 보내
말기환자 소원은 일상의 행복
강아지 안고 숨진 백혈병 소년
가족들 밥 차려준 유방암 환자
"임종 가까우면 병원행 줄여야"


"죽기 전 재산 같은 걸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 상처 정리가 더 중요합니다. 말기 환자와 상담하다 보면 누구나 가족관계 상처를 갖고 있어요.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상처를 정리하고 떠나야 합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가 보는 '좋은 죽음'이다. 연명의료는 최대의 적이다. 허 교수는 내과 전문의 34년 동안 연명의료와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달 4일 임종기 환자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의 네 가지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이를 앞두고 허 교수가 최근 인생의 다양한 마지막 스토리를 담은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글항아리)이라는 책을 냈다. 17일 연구실에서 품위 있는 마무리의 필요충분조건을 물었다.

-그동안 얼마의 죽음을 겪었나.



"종양내과 환자는 대부분 중증이다. 진행기(3~4기)와 말기환자를 주로 본다. 절반가량이 사망하는데, 30여년 간 6000~7000명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다."

-한국인의 마지막 모습은.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거나 신약을 쓰다가 부작용이 생겨 응급실로 실려 온다. 그 후 중환자실로 옮겨 두서너 달 고통 속에서 보낸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을 품고 떠나게 된다. 연간 3만~5만 명이 그렇게 한다."

-연명의료가 왜 나쁜가.

"중환자실에서 두세 달 보내면 잃는 게 있다. 가족이 임종을 지킬 수 없다. 하루에 두 차례 면회하는데 임종시간을 맞출 길이 없다. 염습장에서 싸늘한 몸을 보는 것과 마지막 온기가 있을 때 교감하는 것, 어느 쪽이 나은가. 후자가 남은 사람에게도 축복이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가족이 기억하는데, 연명의료를 하면 고통스러운 모습밖에 남지 않는다. 본인도, 가족도 힘들다. 어떤 여성은 '터놓고 얘기 한 번 못하고 남편을 보냈다'고 후회하더라.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도 연명의료에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환자는.

"10살 백혈병 소년이 1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계속 나빠졌다. 부모가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집에 데려가도 되겠느냐'고 요청했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면서. 그 소원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간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혹시 탈이 날까 봐 들어주지 못했다면서. 소년은 퇴원했고 한 달 후 강아지를 안고 집에서 편안하게 숨졌다."

잠시 인터뷰가 중단됐다. 수없이 죽음을 목도해온 의사인데도, 말을 잇지 못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허 교수는 "말기환자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별 게 아니다"고 말한다. 한 유방암 환자는 가족을 위해 밥 해주고 설거지를 하고 싶어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가까스로 소원을 풀고 병원에 와서 숨졌다. 20대 말기 여성 신장암 환자는 교사가 꿈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상태에서 교사가 되려면 2주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받으러 퇴원했다.

-가족 중에 연명의료를 거부한 사람이 있나.

"부모님과는 임종과정과 관련한 대화 나누지 못했다. 사촌 형이 연명의료를 거부한 경우다. 형은 간암으로 3년 투병하다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이틀 후 의식 깨어났다. 형이 '얼마 남았는지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언제 의식을 잃을지 모른다, 준비하는 게 좋다'고 말해줬다. 그 후 형의 병실에서 노래와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간호사가 전했다. 형이 가족을 불러 정리를 했던 거다.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마지막 말을 전했다. 딸에게 '아버지가 죽으면 뭐가 제일 아쉬울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딸이 '술 드시고 기분 좋게 현관에서 노래 부르던 모습이 기억날 것 같다'고 답했다. 형은 녹음기에다 노래를 녹음했다. 생각나면 들으라고 남겼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숨졌다."

-좋은 죽음을 맞으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면 된다.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미리 서약한 문서다."

-병원 사망(76%)이 너무 많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집이 가장 편한 곳이다. 선조들이 객사(客死.집 아닌 다른 곳에서 숨짐)를 피한 이유가 다 있다. 선진국은 병원.시설 위주에서 가정호스피스로 바꾸고 있다. 환자나 가족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찾고 있는데, 우리는 시설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자동차정비소 가듯 병원으로 가는 것을 줄여야 한다."

허 교수는 "한국인의 90% 이상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4일 시행하는 법률이 규제가 너무 심하고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어 '서류 없음=연명의료 원함'으로 잘못 받아들여져 연명의료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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