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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 투서 탓에 가족 두고 도산 강제 추방 당해

[LA중앙일보] 발행 2018/01/22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1/21 14:46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18)
사회주의자로 의심받아 조사시작
도산은 동부 지역 한인 학생 방문
의심 벗지 못해 추방대상자 분류

1924년 6월3일 시카고 이민국에서 도산에 대한 직접 심문이 이뤄졌다. 시카고 이민국 문서(2008/967).

1924년 6월3일 시카고 이민국에서 도산에 대한 직접 심문이 이뤄졌다. 시카고 이민국 문서(2008/967).

안창호 감시와 수사

1924년 12월 24일자 앤젤 섬 이민국 자료(23880/1-6)에 의하면 "도산 안창호 가족 관계를 확인하고 그가 미국에 입국한 목적이 무엇이며 얼마 동안 체류할 예정인지를 직접 확인하라"는 내용이다. 이 문서에서는 콩 왕과 찰스 홍 이 이름으로 이민국에 제출된 투서로 조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즉, 미국 이민국은 안창호를 모함하는 투서가 제출된 후부터 안창호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1926년 3월 추방될 때까지 안창호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조사를 실시했고 비자기간이 만기되자 더 이상 연장을 허락하지 않고 1926년 3월 강압적으로 추방시킨 것이다. 이민국 문서를 통해 도산 안창호의 추방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925년 4월 28일자 시카고 이민국 문서(2008/967)에 의하면, 이민국 직원이 106 피게로아 스트리트(106 Figueroa Street)에 있는 흥사단을 방문하여 도산 안창호를 만나려고 시도를 했으나, 당시 안창호는 동부를 여행 중이서 만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워싱턴 카페테리아의 버나드 김이라는 매니저가 도산이 30일 안에 돌아올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고, 도착하는 즉시 이민국 직원에게 알리기로 하였다고 한다. 열흘 뒤인1925년 5월 8일자 LA이민국 문서(23880/1-6)는 안창호 신분 확인을 재차 주문하고 있다.

문서는 "안창호는 N. 106 피게로아 스트리트(N. 106 Figueroa Street)에 거주하고 있으니 확인을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1925일 5월 11일 LA이민국 문서(25140/24)는 "안창호 조사 중"이라는 제목으로 "안창호는 현재 동부를 방문 중인데 30일 안에 시카고에 도착할 것이다. 현재 모든 문서는 시카고로 보내졌다. 샌타바버러에서 알링턴 호텔 편지지에 투서를 써보낸 사람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찾지 못했다. 현재 안창호는 시카고로 갔으니 시카고 보고서가 작성되는 대로 추후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도산 안창호의 부인과 접촉하지 말도록 권유한다"라고 쓰여있다.

이처럼 이민국은 안창호를 흥사단에서 만나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안창호가 동부를 여행 중이서 무산되었고 그가 시카고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카고에서 대질 심문을 행한 것이다. '신한민보' 1925년 7월16일에 안창호의 시카고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동방을 여행 중인 안도산 선생은. 시카고에서 서방을 향하여 발정. 시카고 대학 연구과에서 학업을 연구하는 학생의 통신에 의하건대 안도산 선생은 동방 각처 재류 동포의 심방을 마치고 금월 8일 시카고에서 서방을 향하여 발정하였다는데 안 도산 선생은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와 사우스밴드와 캔자스시티에 산재한 동포를 심방할 예정이라더라"

안창호가 대질 심문에서 밝힌 것과 같이 안창호는 전국 여러 지역을 돌면서 학생들과 만나왔고 또 만날 예정이었던 것이다.

'신한민보'는 도산 안창호가 동부 방문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소식을 1925년 7월30일 "안 도산 상항 착"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방 각처에 산재한 동포들을 심방하던 안창호 씨는 재작일에 상항에 무사 안착하였는데 선생의 말씀을 들은 즉 이번 동방 여행에 많은 취미를 보았으나 한 가지 유감되는 것은 미주 각처에 계신 동포들을 일일이 다 심방하지 못함이라. 특별히 미국 중부와 서부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계신 곳을 제제 심방코자 예정하였었으나 두 가지 사정상 관계로 인하여 중심에 먹었던 바를 진행하지 못함이 실로 유감이라 한다. 그 사정상 관계 중의 하나는 원동으로 다시 회환할 여행권의 기한이 찼으므로 미국 국무성에 연기 청원을 제출하였으나 가부간 회답이 없으므로 여행권에 대한 법률상 관계로 동포 심방을 계속할 수 없음이오, 또 하나는 여비 문제로 인하여 사세 부득이 여행을 정지하게 되매 다수 동포가 거류하는 곳에도 제제히 심방하지 못함이 일대 유감이라 하더라."

이는 안창호가 이민국에 감사 편지를 보낸 내용과 일치한다. 즉 안창호는 동부의 여러 곳곳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여행 허가증이 늦게 도착해서 동포 심방을 계속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안창호는 여행 허가증을 받은 후 계속 동포 사회를 방문했다. '신한민보' 1925년 11월12일에 "안도산 선생의 북가주 순행"이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안도산 선생은 현금 다뉴바와 태프트 등지에 있는 여러 동포들을 심방 중에 있다는데, 불일간에 상항에 도착할 듯하다더라."

이러한 전후의 과정 속에서 1925년 6월3일 시카고 이민국에서 도산 안창호에 대한 직접 심문이 이뤄졌다. 1925년 6월 6일, 즉 심문 3일 후 시카고 이민국 문서(2008/967)는 지난 1925년 4월23일 이민국 문서(25140/24)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성한 도산 안창호에 관한 파일(23880/1-6)과 도산 안창호 심문 파일 3장과 복사본과 함께 돌려보낸다. 이 파일은 1924년 12월 24일 투서가 접수된 직후 작성된 파일을 의미한다.

1925년 6월9일 LA이민국은 "안창호 조사 중"이라는 제목으로 시카고 이민국의 브레케 검사관이 1925년 6월3일 심문하여 작성한 심문서와 샌프란시스코 이민국 문서(23880/1-6)를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으로 다시 보낸다. 이것으로 안창호에 대한 조사는 끝난 것이다.

대질 심문을 마친 후인 1925년 6월24일 연방 노동부의 이민국에서는 안창호 신상 기록을 다시 작성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안창호는 맷소니아 호(S.S. Matsonia)를 타고 1924년 12월16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는데 당시 47세였다. 결혼을 했으며 직업은 교육자이며 영문을 읽고 쓸 수 있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중국 여권을 소유하고 있는데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당시 80달러를 소지하고 있었고 여비는 자비로 충당했으며 1908년부터 1919년까지 미국에 체류한 기록이 있다"라고 돼있다. 그러나 안창호는 1902~1907년 그리고 1911~1919년에 미국에 체류한 적이 있다. 이 문서는 안창호가 8개월간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925년 6월26일 샌프란시스코의 앤젤 섬 이민국 문서(12025/02)는 안창호의 체류 연장 신청 처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안창호는 원래 8개월의 체류 허가를 받고 1924년 12월 16일 미국에 입국했다. 안창호는 미국 전역을 여행했고 콩 왕와 찰스 홍 이가 제출한 투서(1924년 12월 15일 접수) 내용을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그 투서 내용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최종 결정은 모든 정보를 분석한 후 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1925년 7월 11일 노동부 샌프란시스코 이민국 문서(55466/466)에는 안창호의 체류 연장 신청을 허락한다고 적혀 있다.

안창호는 6개월을 더 체류할 수 있었지만 투서로 인해 그는 사회주의자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미국 이민국에서 도산의 신분에 대한 의심이 계속되면서 추방 대상자로 분류가 되었다. 그리고 비자가 만기되는 1926년 3월 초 강제로 출국당하게 된 것이다.

<19회로 계속>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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