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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오지 않는 연하장

모니카 류 / 암방사선 전문의
모니카 류 / 암방사선 전문의  

[LA중앙일보] 발행 2018/01/22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8/01/21 14:58

요즘은 우편으로 전달되는 중요 서류가 거의 없어 오피스 도서실 안에 설치된 우편함은 그 의미를 많이 잃었다. 그래서 우편함을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는 새로운 습관이 붙었지만 지난달 그리고 새해로 접어든 지난주 우편함을 매일 들여다 보곤 했다. 연하장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텔마 할머니의 연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텔마는 30여 년 전, 내가 뉴욕주 업스테이트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을 끝내고 전문의가 되어 카이저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환자다. 당시 중년이었던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터였다. 나의 동료 전문의와의 만남이 힘들고 껄끄러웠다 한다. 중키에 맑고 점잖아 보였던 텔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소견을 받기 위해 두 번째 전문의를 청구했다는 것은 그녀의 강인한 내면을 말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텔마가 만났던 당시의 나는 트리플 마이노리티(triple minority·3중 소수계)를 대표하는 여자 의사, 동양 여자, 젊은 의사였다.

당시는 하나의 암 덩어리가 유방에 있다고 유방 전체를 절제할 필요가 없다는 연구가 많이 발표되고 있던 때였다. 단순히 크기에 의존한 암의 단계를 우선적 중요 정보로 보았던 당시, 그녀의 암은 2단계에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의 크기와 암 크기의 비율이 신체에 큰 변형을 주지 않고도 좋은 수술을 할 수 있다면 2단계 크기의 암이라 해도 완전 절제를 피할 수 있다는 의학 정보도 많이 보급되고 있던 터였다.

그뿐 아니라, 의사를 포함한 제3자에게 '추하게' 일그러진 육체의 변형 가능성이 있다 해도, 환자 자신이 그러한 정보를 이미 알고 이해하며 또 원한다면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떠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즉 모든 정보를 의사가 주지만 결정은 환자가 하도록 하는 것이 윤리에 맞는다는 것을 의료계는 터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더욱 당시 내가 확인했던 것은, 미(美)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점이었다. '모양새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완치율이 동등한데 완전 절제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였다.

텔마가 힘들었던 점은 그녀를 본 동료 남자 의사의 '의료 가부장적 태도'였다. 과거에 가부장적 환경에서 모든 결정을 아버지 마음대로 내렸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신이 내 아내라면 유방 완전 절개를 하라 할 것입니다!'라는 의견에 그녀는 고마워하기보다는 좌절했다. 대화의 길을 남겨 놓지 않은 선언이었다.

물론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정보를 정돈해서 의사 자신의 견해를 환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너무 열정적으로 휘말리다 보면 객관적 자세를 잃기도 한다.

텔마는 완치되었다. 유방 부분 절개 후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은퇴하여 LA동부 인랜드 쪽 은퇴 마을로 이사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아직 이 세상에 있어요'라고 한 줄의 소식을 써서 카드를 보내오곤 했다.

텔마는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답장을 쓸 연하장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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