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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만델라와 아이스하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테디) 루스벨트. 둘은 삶의 궤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만델라가 거의 서른 해를 쇠창살에 갇혀 지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만델라가 '화해와 통합의 아이콘'이 된 데는 루스벨트의 영향이 컸다. 둘은 어떻게 10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떨쳐내고 '하나'가 됐을까.

'만남'의 단초는 짐작컨대 스포츠. 사연은 이랬다. 집권 첫해, 만델라는 럭비 국가대표팀 '스프링복스'의 주장을 관저로 불렀다. 잔뜩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었으나 말엔 비장함이 묻어났다. "대표팀에 흑인들을 넣어 주시오." 당시 스프링복스는 백인들의 전유물. 인종차별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터다. 오죽했으면 국가대항전이 열려도 흑인들이 상대팀을 응원했겠는가.

자국팀에 야유를 보내며 지기를 바라는 국민들. 만델라는 이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프링복스를 흑백 혼합팀으로 만들라는 압력을 넣은 것. 대통령의 주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꼭 우승해 주시오." 만델라는 이듬해(1995년) 남아공에서 열리는 럭비 월드컵을 인종화합의 대제전으로 만들 심산이었다. 그래서 어떡하든 이겨야 했다.



최약체로 분류돼 참가국마다 남아공을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판국에. 주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만델라는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숙소로 돌아가 읽어 보라는 말과 함께.

"이러쿵 저러쿵 훈수나 둘려는 사람이 중요할리 없지요. 정말 소중한 사람은 경기장에 있는 투사들입니다." 루스벨트가 퇴임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것으로 흔히 '경기장의 투사(Man in the Arena)'로 불리는 명연설이다. "(투사는) 부단한 열정으로 대의를 좇아 성심을 다해 몸 바쳐 싸웁니다. 잘 되면 승리의 결실을 맛볼 것이요, 설사 진다해도 대담하게 맞서다 쓰러질 것입니다."

비록 루스벨트를 인용했지만 만델라의 진심이 느껴졌다. 편지를 읽은 주장은 울컥했다. '흑백은 하나'라는 대의를 따른 덕분인지 남아공은 월드컵에서 연일 기적을 써내려 갔다. 영국과 호주에 이어 세계 최강 뉴질랜드마저 꺾고 우승 트로피를 안은 것. 이 감동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 '인빅터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남아공의 럭비 월드컵 제패는 1980년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팀의 동계올림픽 우승과 함께 스포츠 역사에서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그해 유력한 금메달 후보는 '북극곰' 소련. 미국은 대학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는 없는 일. 그런데도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하고는 드디어 소련과 맞붙었다. 연장 혈투 끝에 이긴 쪽은 미국. 당초 메달권에 들지도 않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팀이 투혼을 불사르게 된 동력은 '경기장의 투사'였다. 선수들마다 빙판에서 '대담하게 맞서다 쓰러지겠다'며 다짐, 또 다짐한 결과물이었던 것. 냉전이 한창일 무렵이어서 미국의 우승은 파장이 컸다. 얼마 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스스로 무너지는 운명을 맞지 않았는가.

평창 동계올림픽의 관심이 온통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쏠려있다. 캐나다 출신의 대표팀 감독이 작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콕 찍어 정리해줬다. "우리는 맹수인가, 먹잇감인가." 문장은 다르지만 내용은 '경기장의 투사'나 진배없다. 단일팀이 맹수가 돼 돌풍을 일으키면 효과가 극대화될 텐데. 한낱 먹잇감으로 전락하면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디 전쟁 뿐이랴. 스포츠에서도 '승리 외엔 대안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일찌기 만델라가 간파한 경구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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