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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독일 국민에게 고함

1793년 1월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프랑스 혁명은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1799년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은 10월 갑자기 병력을 동원, 통령으로 독재군주와 다름없는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전쟁중이던 오스트리아 및 영국과 강화조약을 맺은 다음, 1804년에는 마침내 제위에 올라 나폴레옹 황제 시대가 개막되었다.

나폴레옹 군은 바다에서는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철저히 패배했으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동맹군과 겨룬 지상 전투에서는 연전연승하여 오스트리아가 영국과의 동맹에서 탈퇴하게 만들었다. 한편 나폴레옹은 1806년, 독일의 16국을 묶어 라인동맹을 결성시키고 대륙봉쇄의 일익을 담당하게 했다. 후에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연방의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동맹에 가담했다. 당시의 독일연방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제후국으로 구성된 국가연합이었고 지배권은 오스트리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프로이센은 1806년, 나폴레옹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했으나 나폴레옹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예나를 점령하고 그해 10월 14일에는 베를린에 입성했다. 1807년 6월14일, 프로이센의 빌헬름 3세는 프랑스에 굴복, 강화 조약을 맺었다. 프로이센은 이 조약에 의해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국민들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포자기했다. 국토는 분할되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이 부과되었다. 이런 국가위기 때 철학자 피히테는 프랑스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낙망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피를 토하는 열변을 토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 이라는 제목의 우국 강연이다.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나폴레옹 군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베를린 학사원에서 매주 일요일에 한번씩 열린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독일 국민의 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히테는 패전 후 독일 국민에게 만연한 패배감·이기심·나태함을 지적하면서 국가 재건에 필요한 새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피히테의 열변에 감동한 국민들은 적극 호응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족혼을 위한 국민교육을 시작했다. 청소년들에게 도덕 재무장과 민족혼을 깨우치는 운동이었다. 그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국애족하자거나 희생봉사하자는 교육이었을까.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가장 상식적이고도 소박한 시민정신의 실천이었다.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비가 오지 않으니 우산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옆구리에 끼지 말고 길이로 세워서 들고 걸어가야 한다는 식의 상식이었다. 옆구리에 끼고 가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부딪힐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들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바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70년 후인 1871년에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보불전쟁이었다. 이번엔 70년 전과는 달리 독일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 몰트케가 귀국하였을 때 국민들의 열렬을 환영을 받았다. 이때 몰트케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공입니다. 이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립니다!”

국가의 장래는 어린이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느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독일의 경우 이런 내용들이 수십년 후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독일은 보불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어 파리를 점령하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그리고 분열되었던 독일을 하나로 통일했다. 흔히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고 배달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극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가르침을 소홀히 한다. 오늘날과 같이 가치관이 망가진 시대에, 이기심과 물질주의로 병들어 가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할 것은 아주 평범하고도 상식을 존중하는 도덕심이다. 이웃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바로 인간의 기본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바로 서지 않아서 지불하는 거래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도덕심 부족을 얘기할 때, 흔히 재벌 등 가진 자들의 경우가 문제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만 본 것이다. 사회 전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부패뿐 아니라 민중주의도 도덕을 인식하지 못해서 나오는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다 도덕 수준이 낮아져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에 만연된 법 경시 풍조도 도덕 수준 저하와 관련이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은 지켜야 한다. 광기가 우리 사회 곳곳에 판친다. 합리는 오간 데 없고, 이념에 매몰된 ‘내 생각’만 있다. 역사는 광기에 기대어 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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