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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 자본 결집해 도산과 함께 회사 창업

[LA중앙일보] 발행 2018/02/19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2/18 17:14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22)

1911년에 찍은 파차파 한인촌의 한인들.

1911년에 찍은 파차파 한인촌의 한인들.

김인수-김용련-김삼손 3대 거주
같은 초등 다니고 같은 묘지 묻혀

집 비운 도산 위해 가족에 큰 도움
나중에 중가주 델라노서 농장 운영




김인수 가족
김인수는 안창호 부인 안혜련(이혜련)의 외오촌숙(성이 다른 일가 가운데 아저씨뻘 되는 사람)으로 리버사이드 지방회에서 활동하며 파차파 캠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 오래 거주했다.

1905년에는 리버사이드에서 지방회장을 역임했는데 그때 안창호를 맞이하는 행사를 열었다. 주로 오렌지 노동주선사로 활동하였다. 1912년에는 동포들의 자본을 결집하여 경제활동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안창호와 함께 북미실업주식회사를 창립하였다.

또한 참외 농사나 감자 농사 등 실업활동에 활발히 하였다. 김인수에게는 장남 김용련과 차남 김용찬, 장녀 김돌리, 차녀 김노라가 있다.

1913년 이후 김인수가 농업 경영을 위해 타처로 이거하였으나 자녀들은 리버사이드에 남아서 학교를 다녔다. 차남 김용찬은 1925년, 둘째 딸 김노라는 1935년에 사망하였다. 김인수는 말년에 다시 리버사이드에 거주하기도 했는데 리버사이드는 그의 본거지였다.

맏아들 김용련 역시 가족을 이뤄 리버사이드에 거주하였다. 1912년 김인수가 실업활동으로 타처로 이거했을 때 리버사이드를 지켰다. 오렌지 노동 주선일을 하였고 남아 있는 가족을 교육시켰다.

김용련의 부인은 김헤이즐이고, 자녀들로는 김삼손, 김맬리, 김조니, 김루시, 김바이올렛이 있다.

김인수의 자녀인 김돌리와 김용련의 자녀들인 김삼손, 김맬리, 김루시가 리버사이드 한글학교를 같이 다녔다. 김용련의 3녀인 바이올렛은 교사로 근무하다가 은퇴했고 지금도 리버사이드에 거주하고 있다. 김용련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존 김만 결혼했다고 랠프 안이 알려 주었다.

리버사이드 시의 또 다른 묘지인 올리브우드 묘지에서는 헤이즐 김(Hazel Kim, 1889~1978)의 묘지가 발견되었는데 말리(Mallie M Kim), 조니(Johnny Kim), 루시(Lucy R Kim), 바이올렛(Violet C Kim)의 어머니이다. 말리는 리버사이드 갈보리 장로교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영N.(Young N. Kim, 1889~1954)의 묘지도 있다. 그는 김용련이다. 에버그린과 올리브우드 묘지에서 한인 6명의 묘지를 발굴했으며 그들이 모두 한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인수의 가족은 디렉토리 명단에 따르면, 김닌수(Kim Nin Soo) 아래에 샘 김(Sam Kim), 돌리 김(Dollie Kim), 체스터 Y. 김(Chester Y Kim)이 있다. 김닌수는 김인수이다. 샘 김은 김인수의 손자이자, 김용련의 아들이다. 신한민보에는 김삼손으로 나타난다. 돌리 김(Dollie Kim)은 김달리 또는 김딸리라는 김인수의 맏딸이다. 체스터 Y. 김(Chester Y Kim)은 김돌리의 남편 김정일이다. 김돌리와 김정일은 1926년에 결혼하였다. 이 결혼식은 신부 김돌리의 친정인 김인수의 샌타애나 사택에서 이뤄졌다. 체스터 김과 돌리 김 사이에 아들 도널드 한명이 있다.

김인수와 관련된 최초의 기사는 1905년 공립신보이다. 리버사이드에서 귤따기 노동을 주선하는 김염수는 김인수일 수 있다.

'공립신보' 1905년 12월 6일 "적귤방당. 전호에도 말하였거니와 리버사이드에 지금 귤따기를 시작되었는데 공가는 매일에 1원 17전씩이오 그곳에 있는 김염수 씨가 귤 딸 사람 백명을 모집하는 중이라더라."

당시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이 호황을 맞아 백명의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인수는 1905년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리버사이드 거주한 후 1909년 타지역으로 이주했다가 1910년 다시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로 돌아와서 초기 한인타운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아들 김용련도 초기 리버사이드 한인타운 설립 및 운영의 중심 역할을 했다.

김인수의 첫째 아들 김용련은 1906년에 리버사이드 지방회에서 활동하였는데 '공립신보' 1906년 12월 22일 '하변회 보고'에서 리버사이드지방회 사찰로 나타난다. 특히 도산 안창호가 한국에서 신민회 활동을 하고 자주 타지역을 순방하여 정작 자신의 가족들을 돌볼지 못했을 때 이혜련의 삼촌 김인수는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막내 아들 랠프는 증언해 주었다.

김인수는 그후 중가주의 델라노(Delano)로 이주하여 큰 농장을 운영했다.

<23회로 계속>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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