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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한국 '미투'의 역사적 의미

요즈음 한국에서는 소위 '잘난 인물'들 중에 두 발 편히 뻗고 잠을 잘 수 없는 이들이 많으리라. 이러다가 나도 한방에 '훅' 가는 건 아닐까, 만약에 터진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평생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사태를 매일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한국의 '미투(Me Too)' 운동 탓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이 운동이 응원하고 공감한다는 '위드유(With You)' 메시지와 함께 한국사회를 달구고 있다.

여검사 서지현씨의 용기 있는 폭로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이미 검찰 내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수면 위로 올렸고, 떵떵거리던 가해 당사자는 한국땅에서 더 이상 얼굴 내놓고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어진 성폭력 피해 폭로로 문화공연계, 대학가, 종교계의 권력형 성폭력 문화가 속속들이 까발겨지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부인, 소속 기관 및 회사의 입막음, 솜방망이식 처벌, 피해자에 대한 왕따 및 무고 소송, 피해자 퇴직, 가해자의 재등장, 언론의 무관심 등으로 이어져왔다. 용기를 내 피해를 폭로했지만 피해자만 고통을 안고 흐지부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달라졌다. 웬만한 이슈는 찬반으로 갈려 극심한 여론싸움을 벌이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 미투운동처럼 거의 전국민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건 역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사건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한국의 미투운동은 일시적인 '폭로 이벤트'의 수준을 넘어 한국 인권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성인 남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견해를 물은 결과 88.6%가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73.1%가 미투운동을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답했고, 한국사회에 성폭력 문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94%에 달해 이 문제가 전 국민의 공감을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성폭력은 권력이나 상하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응답이 96%에 달해 사람관계를 수평이 아닌 갑을·수직관계로 설정하는 한국적 문화가 성폭력 발생의 토양임을 보여줬다.

미투운동이 국민적 공감을 받고,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잘못된 관행을 이참에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결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데는 바뀌어진 정치적 토양도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새 정부 들어 각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이 없었다면 과연 미투운동이 지금과 같은 탄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

소속 의원들의 온갖 성추문으로 '성누리당'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새누리당이 아직까지 집권하고 있었다면 이같은 미투운동의 동력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의 미투운동은 비뚤어진 남성우월적 성문화를 바로잡는 또 하나의 적폐청산 작업의 하나다.

한국의 미투운동이 또 하나의 냄비근성으로 끝나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권력·상하 관계를 악용해 마치 그것이 특권인 양 여성을 성적 희롱물로 삼아온 수많은 남성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가 한 단계 성숙한다면 미투운동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검사의 성추행 피해 사건을 접하고 설득 끝에 피해 당사자인 서지현 검사를 스튜디오에 불러내 인터뷰를 진행했던 JTBC의 '촉'이 없었다면 그 사건은 한낱 검찰 내 잡음으로 끝났을 지, 미투운동이 한참 연기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 인물이 한 방에 '훅' 가도 동정심이 안 가는 요즘이다.

(*이원영 논설실장의 자연건강 강연회 겸 칼럼집 '진맥세상' 출판 사인회가 3월 1일(목) 오후 2시 부에나파크 더소스몰 사무동 4층 중앙문화센터, 14일(수) 오후 7시 LA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각각 열립니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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