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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처용과 처용

처용가(處容歌)라는 노래는 우리나라 문학의 역사에도 어학의 역사에도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왜냐하면 처용가가 신라 향가(鄕歌) 해석의 실마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향가는 한문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니어서 도대체 읽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암호 같은 노래였던 겁니다. 그런데 처용가가 해석에 빛을 보여줍니다. 바로 처용무가(巫歌) 때문입니다. 처용무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가(巫歌)'입니다. 즉 무당이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처용가와 처용무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끝부분, 즉 결말이 다른 두 노래의 구성 때문이었습니다. 처용가와 처용무가는 해석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앞부분의 '동경 밝은 달에 밤늦게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네 개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뉘 것인가'까지는 내용이 같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처용가에서는 '본래 내 것이지만 앗아감을 어찌하리오.'로 맺는 반면에 처용무가에서는 '이때 처용아비가 보신다면 횟감이로다.'로 끝맺고 있습니다. 처용가에서는 관용을 노래하는데, 처용무가에서는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노래인데 전혀 다른 구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처용무가를 원래의 노래라고 보았습니다. 불린 시기로 보자면 처용가는 신라의 노래이고, 처용무가가 고려의 노래이니 당연히 처용가가 앞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무가의 구술성과 역사성에 더 주목했습니다. 무가는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확히 근거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라서 추측만 가능한 상태입니다.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

처용가는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옵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는 스님의 관점, 즉 불교의 관점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가보다는 훨씬 더 자비나 관용의 내용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일연 스님이 개작을 하였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라 당시에 이미 불교의 영향으로 처용무가를 불교적으로 바꿔 부르는 시도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에서 역신을 '횟감'으로 표현하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처용가는 역신을 쫓는 노래입니다. 처용은 용왕의 아들로 나옵니다. 주로 이런 종류의 묘사는 무당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밤늦게 노니는 것도 유흥보다는 굿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도 처용은 무당이었을 겁니다. 처용가는 무당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신을 쫓는 일도 당시에는 무당의 일입니다. 그래서 후에 처용은 문신(門神)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문에 붙인 처용의 그림만 보아도 역신이 얼씬도 안 한 것이죠. 하지만 불교가 들어온 후에 이 노래는 관용의 노래로 모습을 바꾼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우리 무속(巫俗)에도 병을 잘 달래거나 대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용서나 관용은 무가와는 덜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처용 무가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늘 생각하는 처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처용가의 자비와 처용무가의 위협 사이에서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용가가 좋았을까요. 처용무가가 좋았을까요? 이 두 노래는 어떤 장면에서 힘을 발휘하게 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처용가가 좋은지, 처용 무가가 좋은지 생각해 봅니다. 제게 다가오는 수많은 고통과 번뇌를 부드러운 자비와 용서로 극복하게 될까요? 아니면 내가 더 강해져서 고통을 물리쳐 내는 모습으로 극복하게 될까요? 부드러움과 곧음의 양면을 봅니다. 저는 두 노래 속에서 우리가 삶을 만나는 태도를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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