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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왜 '대한독립 만세' 였을까

[LA중앙일보] 발행 2018/03/01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8/02/28 20:48

3·1절이다. 선조들이 피로, 눈물로 항거했던 그 해 그 날이 1919년 오늘이었으니 벌써 99년, 내년이면 꼭 100년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그날을 기념한다.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염원했던 그날의 구호가 아직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당시 선조들은 '조선독립 만세'가 아니라 굳이 '대한독립 만세'라고 했을까? 그 시대로 돌아가 보면 답은 너무나 당연했다. 첫째는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점된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시 선조들이 원했던 것 역시 조선의 복구가 아니라 '대한'이라는 새 나라로의 광복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19세기 말 한반도 정세를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에 진주한 일본군은 고종과 중전 민씨를 경복궁에 유폐시키며 침략 야욕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친일내각을 출범시키고 중전 민씨를 무참히 시해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하면서 국권을 지키고자 했고, 대한제국은 그런 배경에서 생겨난, 대일 항전을 위한 전시 비상국가였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우리는 그동안 갑오경장-을미사변-아관파천으로 배워 왔다. 하지만 이는 침략 야욕을 철저히 숨긴 일제의 의도가 반영된 용어들로 모두 갑오왜란-을미왜변-아관망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민비라는 호칭도 일제가 중전 민씨를 격하해 붙인 것이며, 명성황후는 대한제국 때 추존된 것이다.)

대한제국은 1897년 세워져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까지 13년도 못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존속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지대했다. 무엇보다 백성들로 하여금 근대적 주권 국가 국민으로서 '대한인(大韓人)'이라는 자각을 하게 했다. 태극기가 국기로 정해졌고, 애국가와 무궁화가 국가의 상징이 된 것도 이 시기다. 또한 수많은 학교와 더불어 각종 외국어·실업교육기관 등이 잇따라 세워지면서 훗날 독립 투쟁을 위한 민족적 토양이 마련된 것도 이때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한제국을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로 여기며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임금도 그대로, 백성도 그대로인데 뭐가 다르냐는 생각, 그래봤자 패망을 막지 못한 무능한 나라가 아니었느냐는 인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다.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종의 무능과 대한제국의 실패만 일방적으로 강조했던 일제의 역사 프레임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제는 한반도 병탄 직후부터 대한이라는 국호 말살 정책을 폈다. 대한총독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라 칭한 것부터 그랬다.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바꾼 것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대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대한이라는 호칭은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국권 상실 이후 미주나 만주나 연해주 등지의 해외 독립운동 단체들이 예외없이 대한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유도 이것이었다. 3·1운동의 '대한독립 만세' 구호 역시 그런 점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외침이었던 것이다.

3·1 정신을 계승해 세워진 상해 임시정부가 나라 이름을 '대한'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국은 황제의 나라, 민국은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뜻한다. 임시정부가 '대한제국' 계승을 내세우면서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꾼 것 역시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가 부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 가사도 대한제국 때 만들어졌다. 대한제국은 이렇게 우리 곁에 생생히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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