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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평양의 양치기 소년

3월 5일 평양 방문, 김정은 위원장과 다음 6개항 합의. '남북정상회담 4월 개최, 남북 정상간 핫라인 설치, 비핵화 의지 표명, 북미대화 용의, 대화기간 핵실험 중단, 남측 태권도 시범단 및 예술단 평양방문'. 3월 9일 백악관 방문.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초청 메시지 전달. 트럼프 대통령 전격 수락.

서울과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연일 특대형 소식들을 쏟아내는 대북특사단의 숨가쁜 행보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북미간의 극한 대치상황에서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닫던 한반도 정세는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며칠사이에 대화와 평화모드로 180도 선회한 것이다.

특히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까지 명시하며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해 온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비핵화 용의를 천명한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대한 국면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또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까지 했다.

더욱이 이러한 대반전을 한국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코리아패싱이라는 자조섞인 무력감에서 일거에 벗어나면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눈으로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선대의 유훈'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 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과거 4반세기를 돌아보면 북한은 여러차례 비핵화 약속을 해왔으나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처럼 매번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첫번째 약속은 1990년대 초 김일성 주석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1992년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고 평양에 갔던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1994년 다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핵개발 중지를 건의했다. 김일성은 얼굴을 붉히면서 있지도 않은 핵을 어떻게 중지하느냐고 역정을 내었다고 한다.

외교적인 노력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 추출을 계속하자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을 외과 수술식으로 제거하기 위한 군사작전계획을 수립했다.

작전계획 실행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핵개발 포기를 약속했다면서 북핵 위기는 자신의 방북으로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카터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영변 핵시설 제거를 위한 북폭 계획은 명분을 잃고 백지화되었으며 카터는 그 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 6월, 4억5000만 달러를 받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핵을 개발하지도, 보유하지도 않을 것임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계속해서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며 2006년 마침내 첫번째 핵실험에 성공했다.

2008년 6자회담이 진행중이던 때 북한은 2대의 경수로 건설과 유류공급을 받는 조건으로 다시 한번 핵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 후에도 핵개발을 계속해 지난 해에는 6차 수소폭탄 실험까지 했고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에 둔 ICBM 개발완료를 목전에 두고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평화공세가 그의 말대로 '선대의 유훈'이라는 비핵화를 실천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핵기술 완성을 위한 시간을 벌고 대북 제재도 완화시키기 위하여 또 한번 양치기 소년처럼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는 것인지는 좀더 두고보아야 할 일이다.


채수호 / 자유기고가·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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