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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한반도 병리학

현대의학이 발전했지만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대병이라고 일컫는 대사질환은 갈수록 늘어나고, 환자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만성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병원을 전전하고, 이런저런 약을 먹어 보아도 몸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해 절망감에 갇힌 이들이 많다. 특히 의사와 약이 내 몸을 언젠가는 낫게 해줄 것이라는 '맹신'에 사로잡힌 이들일수록 병에서 헤어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A는 만성 위산과다에 시달렸다. 수시로 위산이 역류하고, 대변은 언제나 설사에 가까울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의사는 항생제, 제산제 등을 처방했다. 잠깐 호전되는가 싶더니 점점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한의원도 찾았다. 비위가 허해서 오는 증상이니 이를 튼실하게 해주는 한약을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 했다. 먹는 동안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역시 별 차도 는 없었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를 즐겨 읽던 A는 '만병의 원인은 먹는 데서 비롯되고, 먹는 것으로 고칠 수 있다'는 메시지에 주목했다. 먹는 것을 바꾼다고 병이 고쳐질까, 반신반의하던 A는 속는 셈 치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식단을 변화시켰다. A는 지금 극적으로 달라진 자신의 몸에 감탄하며 그동안 병원과 약을 전전하던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있다.



A가 위장질환을 앓던 이유는 잘못된 식생활이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약만 먹어댔으니 나을 수 없던 것은 당연지사.

만성병이 잘 낫지 않는 이유는 뭘까. A의 경우처럼 원인을 찾지 않고 오로지 증상을 '적'으로 간주해 이를 없애버리려는 치료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증상을 만들어내는 '주적' 원인은 따로 있는데 증상만 공격하니 이겨낼 수 없고, 오히려 엉뚱한 데 군사력을 집중하다 보니 정작 적군이 세력을 키울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다.

증상을 적으로 여겨 이를 섬멸하려는 '공격적' 치료방식으로는 질병의 근원적 치료가 불가능하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은 잘못된 식생활에 대한 '경고' 신호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신호를 고맙게 여기고, 몸을 어렵게 만든 원인을 수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거꾸로 그 경고를 박살내려 하는 치료행위가 횡행하고 있다. 그런 치료로는 몸과의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질병이 70년 넘도록 치유되지 않고 있다. 치유는커녕 갈수록 만성병이 고질화되어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치달아 왔다. 한 강토에서 한 민족으로 살았던 역사도, 남과 북이 왜 분단되었는지에 대한 성찰도 잊은 채 남과 북은 서로를 적으로, 원수로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질병(증상)을 적으로 여겨 없애버리려는 치료가 환자에게 온전한 건강을 되돌려 줄 수 없듯이 남과 북이, 북과 미국이 상대를 소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역사가 지속되는 한 한반도 질병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겉의 증세만 없애려니 병은 만성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핵전쟁의 먹구름이 짙던 한반도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예상치 못한 전기가 마련됐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상대를 악마화하고 섬멸의 대상으로 간주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다.

질병의 회복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달려 있듯, 한반도 질병의 치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역사적 만남이 한반도 건강 회복에 전환기적인 사건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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