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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1987…촛불…힙합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언뜻 암호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단어들의 뿌리를 짚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중의 분노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들 세계에서 제왕으로 군림했던 가해자를 ‘#me too’라고 고발할 수 있었던 힘은 참을 만큼 참은 피해자들의 울분이 폭발한 데 있었다.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6.29 민주화 선언을 끌어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한국 땅에 정착시킨 1987년, 그해 한 차례 봄이 왔다. 제도로서의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6월항쟁에서 출발했고, 그 바탕에는 군부 독재가 부른 시민들의 분노가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 겨울,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 모였다. 87년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타락해버리자 시민들은 저마다 촛불을 들고 혁명을 외쳤다. 그렇게 모인 공공의 분노가 대통령을 바꿨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쓸데없는 일에 화내고 있는 건가?” 자책하게 된다면 이것이 마땅한 분노인지 여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간혹 용감한 저항과 알량한 호기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은 그의 책 <분노하라> (사진)에서 “분노할 일을 넘겨 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돼라.”고 외쳤다. 덧붙여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일갈한다. 분노할 힘과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기 때문이다. 결국 분노는 현실에 참여해 바꾸겠다는 의지 표현인 셈이다.

분노에도 급이 있다. 골목길 주차 시비 현장을 가정해보자. 상대편 차가 경차인 데다 차 주인이 20대 여성인 경우, 남자는 다짜고짜 차 빼라고 소리치고 여자는 월담하다 학생주임에게 걸린 여학생처럼 잔뜩 쫄아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운전도 못 하는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딜 들이대냐는 호통은 덤이다. 반면 팔뚝에 봉황 문신을 두른 남자가 찌푸린 표정으로 차 문을 내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차 빼라고 소리 지를 준비하던 남자는 문신남을 보자마자 머쓱해 하며 급하게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직장 상사와 고객의 부당한 갑질에 머리를 조아리던 영업맨이 집에 와서는 폭력 남편으로 변신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권력의 먹이사슬 아래 칸에 매달려 있는 남자가 감히 윗 칸에 대들 용기는 없으니 만만한 아래 칸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모양새다.

정작 화내야 할 일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유독 작은 일에 파르르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정의로운 분개가 실종된 성난 사회의 근저에는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저항하기 위해서는 순종과 인내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을 거슬러야 하고, 홀로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며, 그에 따른 비난과 차별을 감당해야 한다. 저항하는 대신 냉소하기는 아주 쉽다. 적어도 문제의식은 느꼈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자기 위안과 더불어 나서 봤자 달라질 건 없더라는 무력감이 무관심을 부추긴다.

스테판 에셀은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나지막이 경고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을 촉구한다. 자신이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끊임없이 분노의 대상을 찾아 거침없이 분노하라고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일 투성일 것이고, 그것을 감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이 칼럼의 마지막 주제 ‘힙합(Hip Hop)’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랜 노예제도에 억눌려있던 흑인들은 그들의 한과 울분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가난하고 못 배운 흑인들이 제대로 악기를 갖추고 장단조 형식을 맞췄을리 없다. 그렇게 기존 레코드를 버무려 리듬을 만들고 하고 싶은 말을 가사로 옮겼다. 이것이 힙합과 랩의 시작이었다. 흑인의 분노는 힙합이라는 훌륭한 대중음악을 탄생시켰다.

지금의 me too 운동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화두가 된 듯 보인다. 당분간 사회를 달구는 뉴스로 흘러가 버리는게 아니라 대중의 분노로 아주 약간의 변화라도 끌어내길 소망한다. 그 과정이 비록 길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이 또한 의미 있는 문화 혁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소영/언론인, VA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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