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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느린 삶이 주는 기쁨

"바쁘다, 바빠!" 바쁜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하루의 일과를 빼곡히 채우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음식도 주문하자마자 나와야 한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마나 바쁘세요?"라고 인사한다. 인터넷도 몇 초를 기다리지 못해 다른 곳으로 건너뛰고, 방송도 조금만 재미없으면 채널이 돌아간다. 방송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기 위해 빠른 화면 전개와 과장된 효과음, 자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다가 가끔은 "채널 고정"이라는 반협박도 일삼는다.

그런 세상에 7시간짜리 방송이 등장했다. 스포츠 경기도 두세 시간이면 질릴 만도 한데, 기차가 가는 길을 따라 주변만 비추는 프로그램이 노르웨이에서 방영되었다. 2009년 노르웨이의 국영방송 NRK는 기차가 달리는 풍경만 7시간 내보냈다.

그 흔한 설명도 없이 그저 잔잔한 음악과 기차 옆을 지나는 풍경만으로 7시간을 채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그 기차에 탄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 종착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집 소파에서 일어나다 옷걸이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그 방송을 120만 명이 시청했다. 당시, 노르웨이 인구의 25%였다.

이 방송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에는 134시간짜리 방송을 준비했다. 그것도 생방송으로.

노르웨이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유람선에 카메라를 달고 5박 6일간의 생방송이 시작됐다. 지난번 기차 여행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 방송을 시청했다.

배에 달린 카메라는 해안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비추고, 풀을 뜯는 소를 한참이나 주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배가 가는 길목마다 낯선 사람들이 등장했다. 지역의 연구소 소장님이 언덕 위에 올라 손을 흔들더니, 군인들이 배 위에서 거수경례를 붙이고, 노르웨이의 여왕까지 나와 손을 흔들었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 저 내일 학교에 늦어요!"라는 푯말을 들기도 했다. 물론 그 학생은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다. 선생님도 방송을 시청했기 때문이다.

유람선 주위에는 제트 스키며 요트가 나타나 길동무가 되었다. 배 위에서든, 언덕 위에서든, 다리 위에서든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축제가 벌어졌다.

흥에 겨운 사람들은 지나가는 배를 향해 손과 깃발을 흔들며 기뻐했다. 134시간의 항해를 마쳤을 때 이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긴 생방송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방송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이런 방송을 '슬로우 티피(Slow TV)'라고 부른다. 분주함에 지친 현대인들은 이렇게 느릿느릿 변하는 화면 속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요즘 TV마다 이런 방송이 주를 이룬다. 낯선 곳을 천천히 여행하며, 민박집을 운영하며, 밥을 얻어먹으며, 별다른 이야기도 없는 일상의 풍경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민자도 바쁘다. 누구보다 바쁘다.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한다. "왜 이렇게 바쁘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바쁠 일도 없다. 남들이 바쁘다고 덩달아 바쁠 필요는 더군다나 없다. 조금만 여유를 갖자. 잠깐이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천천히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바쁜 세상이지만 느리게 사는 삶이 주는 기쁨도 한껏 누리며 살자.


이창민 / LA연합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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