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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자력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

대학교 신입생이 수업시간에 늦었다.

교수가 이유를 물으니, 부모님이 늦게 깨워서 늦었다고 당당히 대답했다고 한다.

얼마 전 읽은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자녀의 수가 적은 현대사회의 과보호가 낳은 폐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원불교에서는 평등세상의 건설의 주요한 방법으로, 자력을 양성하여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무자력자를 보호하자는 '자력양성'을 주요 가르침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우선은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예비교무 시절, 스승님이나 동지들의 따뜻한 격려보다도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정진하는 도반들의 모습이 나에게 더 큰 힘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도반들은 여러 가지로 주위를 불편하게 했다.

또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필자가 존경하는 대학시절 은사님은 이메일 끝 부분에,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중한 나의 인생이 남의 손에 좌우될 수 있다'는 짧은 문장을 항상 적어 놓고 모든 이메일을 보낼 때 함께 보낸다. 자력을 양성하지 못하면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예전에 독거노인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다. 한번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한 노인분이 "이렇게 살아서 뭐해. 빨리 죽어야지" 하시며 흐느끼신다. 이처럼 내 능력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의 고충을 보거나 듣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직무유기의 심경마저도 갖게 하는, 내게는 또 다른 의미의 고충이다. 무자력자 보호를 위해서는 이웃의 어려움에 대해 무심하지 않을 만한 심경(자비)과 함께, 무력하지 않을 만한 능력(자력)도 갖추어야 하겠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돕다 보면, 수입이 전혀 없으면서도 비누 한 장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고집 센 분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분들을 두고 남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좁은 속을 핀잔하기도 하고, 가난이 만들어 놓은 비뚤어진 심사를 탓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력양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고집은 얼마간의 물질적 수혜에 비하여 자신의 처지를 개척해나가는 데 더 큰 힘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소득이 1만~2만 원 정도 많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못 받게 되어 아쉬워할 법도 한 어느 선배는, 국가의 지원을 안 받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을 유지하게 되어서 오히려 당당하고, 그 돈으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자력을 갖추는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하는 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력양성을 소홀히 하는 일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해가 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휠체어를 타게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식의 극언은 삼가야겠지만,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을 만한 육신의 건강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마땅하다 하겠다. 늙거나 병들거나 하여 자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신, 육신, 경제적으로 자력을 갖추기에 노력할 일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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