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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내 친구 '치매 할머니'

정현숙 / 독자
정현숙 / 독자 

[LA중앙일보] 발행 2018/04/06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8/04/05 19:48

91세 정순복 할머니는 만날 때마다 어깨를 끌어안고 큰소리로 웃으며 반가워하시는 나의 친구다.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난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니 "나 알아요?" 하신다. "아니, 처음 뵙지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물으니 나보고 몇 살이냐고 되물으신다. "저 일흔여섯인데요" 하니 "아이구, 나보다 많군. 나는 예순여덟인데" 하신다. 옆에 있던 딸이 귓속말로 "91세"라고 일러준다. "그럼 제가 언니네요" 했더니 그런가 하며 막 웃으신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내 친구 할머니는 만나는 모두에게 명랑하게 "나 알아요" 하시며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신다. 나의 친구는 날마다 새로운 날이고 만나는 모두가 새로운 친구며 항상 즐거우시다.

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니 60대에 찍은 큰 사진이 걸려있는데 자동차 옆에 서 계신 모습이 레드 카펫을 밟기 위해 서 있는 영화배우 같으시다. 50대의 아름다운 딸이 자기보다 더 아름답게 치장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을 보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모녀의 아름다운 동행이 계속되는 한 100세까지도 행복한 삶이 이어지리라.

나이 들어가며 가장 두려운 것이 치매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매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있다. 암보다 무섭다는 것이 치매 아닌가.

그런데 행복한 가족 속에 묻혀 생활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치매도 행복 속에 묻혀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의 일이 다 잊히고 기억이 점점 사라져도 곁에 있는 딸만은 지금처럼 꼭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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