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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직접 재료 사서 코트 만들어줘"

[LA중앙일보] 발행 2018/04/16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4/15 12:55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30)
백신구 가족 ②

1910년 백신구가 리버사이드에 거주할때 큰 딸 백광선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10년 백신구가 리버사이드에 거주할때 큰 딸 백광선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재봉틀 없어 밤새 손으로 작업해 완성
가족들 이름으로 동족구호금 기부해

슬하 5형제 모두 2차세계대전에 참전
군입대는 조국 독립에 도움된다고 인식

백신구 딸 백광선


리버사이드에서 출생한 백신구의 딸 백광선(Mary Paik Lee)은 '조용한 방랑 여행 : 미국의 한국인 여성 개척자(Quiet Odyssey : A Pioneer Korean Woman in America'(1990)라는 자서전에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그 책에는 리버사이드에 거주했던 자신의 가족의 모습과 이주 노동자로서 여기저기 이주하면서 살았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백신구의 아내 손광도는 파차파 캠프 내에 거주하고 있던 30여 명의 총각들의 하루 세 끼를 책임졌다고 한다. 백광선은 다음과 같이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의 열악했던 판자촌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백광선은 또한 자신의 이웃에는 도산 안창호 부인과 필립이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필립 안은 나중에 영화배우가 되어 아시안 아메리칸 최초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별에 이름을 남겼다. 도산 안창호와 그녀의 아버지 백신구는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인데 리버사이드에서 다시 이웃으로 살게 되어 기뻤다고 했다.

그녀는 또한 리버사이드에서의 생활은 매우 가난했지만 기쁜 순간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학교에 입고 갈 코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서 코트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에는 재봉틀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저녁 내내 손수 코트를 만든 것이다. 그 옷은 아름다운 빨간 코트였는데 그 옷을 입는 것이 행복했다. 학교에 가니 다른 아이들이 예쁜 코트를 어디서 샀는지 물어 보았다. 아버지가 손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자 모두들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신구의 자녀들의 학업

1910년 백신구가 리버사이드에 거주하고 있었을 때 장자 백명선과 딸 백광선은 그 곳에서 소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백신구는 1911년에 업랜드로 이주하였다. 이때 백명선 소학교 6학년, 백광선 소학교 5학년, 백도선 소학교 1학년에 다녔다. 백신구 가족은 동족 구호 모금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신한민보' 1919년 8월 16일 "동족을 사랑하면 우리 적십자회에 응모하시오" 기사를 보면 '백신구, 백신구 부인, 백명선, 백도선, 백흔섭'의 이름으로 각각 5원을 냈다. 모두 백신구의 가족이다.

백신구 아들들의 2차 세계대전 종군

특히 '신한민보'(1941년 12월 25일)는 백씨 오형제 모두가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백씨 5형제 전부가 종군. 전시 재미 한인의 진화. 휘디어에 재류하는 백신구 씨 동부인은 일즉 아들 5형제 및 딸을 길러 거의 다 장성하였고 미국이 선전하고 중한국이 또한 선전 후 백씨 5형제 중 에드워드, 아더, 스탠퍼드, 우라우드 4군은 벌써 자원 종군하였고... 특히 백영 군은 전투에서 영웅으로 활약했다"고 '신한민보'(1945년 6월 14일)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한인 청년 영웅록. 백영군은 백전 영웅. 휘티어에 재류하는 백신구 씨 동부인의 6자 영 군은 4년 동안 남태평양 전선에서 미국 비행대의 작격수로 110차를 전투하고 최근 휴가를 얻어 돌아왔고, 이는 백전 영웅의 진화이다. 백영군은 당년 35세 장년이오, 1940년에 자원 종군하여 비행대 작격수로 뉴기니 각지에서 전투하고, 1945년에 필리핀 해방전에 참가하여 전후 폭탄을 던진 수효가 85차요, 전투 통계가 110점에 달하여 해대를 얻을 공적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4개 '오리본'과 3개 '스타'의 표창을 받았고, 최근 45일 휴가를 얻어 휘티어로 돌아왔는데 휴가가 만기되면 다시 다른 전장으로 가게 될 여부는 아직 자세히 모를 일이나 많이는 해대를 얻게 될 터이오, 110차를 전투한 가운데 한번도 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진실로 행운의 군인이며, 그는 말하기를 '지금에 원하는 것은 미군이 왜적을 때려잡는 것을 보면 그에서 더 상쾌한 일이 없겠다' "라고 했다.

당시 미주 한인들은 미군에 입대하는 것이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했으며 많은 청년들이 미군에 입대했다. 2차 세계 대전 중 미군에 입대한 한인은 본토에서만 최소 200여 명으로 알려져 있고 하와이 출신 한인의 미군 입대는 더 많다.

부인 백광도와 딸 백광선의 부인회 활동

백신구의 딸은 1919년 1월 이흥만과 결혼했다. "명년 정월에 성례. 윌로우쓰 통신을 거한즉, 당지에 재류하는 리흥만 씨는 백신구 씨의 영애로 더불어 백년의 인연을 맺었는데 명년 1월 1일에 대례를 행할 예정이라더라" 이흥만의 부인이 백광선이고 백광선이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이광선이 된 것이다. 백광선은 부인애국단으로 활동하며 기금을 4원 냈다. 나란히 이름이 있는 백광도도 4원을 냈는데 백광도는 백광선의 어머니이다. 딸인 이광선(백광선)은 어머니인 백광도(손광도)와 함께 1919년 여자 애국단으로서 기금을 냈다. 백광선은 결혼 후에도 친정 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이다.

백신구의 장남 백명선은 박영순 양과 1929년에 결혼한다. 결혼식은 2월 27일 신부의 고향인 아이다호에 있는 미이미교 예배당에서 열렸다. 다음날 신랑의 본가인 트리몬톤 지방으로 돌아와 3월3일 주일날에 함께 모여 잔치를 벌였다. 백명선의 모친 백광도가 만들어준 오찬을 나누어 먹었다.

백에드워드는 임정구 목사의 딸인 임캐트린과 혼인하였다. 백신구의 5남 백능선 군은 김옥자 양과 연애하여 1938년에 결혼한다. 백능선은 형제들과 동업하여 과채 상점을 운영하고 신한민보 관련 일도 활발히 한다. 백랠프의 결혼에는 빈객이 매우 많았고 이때 전낙청의 조카인 전경무가 사회를 보았다.

<31회로 계속>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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