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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 “떠돌이별 같은 삶이 곧 나의 문학”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5/01 13:31

‘문학 로드’55년 최연홍 시인

“35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묘비에 ‘시인의 아버지’라고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제가 큰 시인이 되기를 기대하셨죠. 그 유언을 지키고자 첫 시집 ‘정읍사’를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버지께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직 큰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낮추는 최연홍 시인. 하지만 최 시인은 이미 스물두 살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 서른 중반에 한인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로 시가 번역돼 소개됐고, 사십 줄에 들어서는 워싱턴 포스트 전면에 김용익 작가와의 대담 기사가 실렸다.

또 지난 2003년에는 미 의회도서관 관계자들 앞에서 대표적인 한인 작가 자격으로 한국어와 영어로 본인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게 속도 겉도 영락없는 시인으로 살아온 지 55년째. 일흔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연이어 시집을 발간하는 등 매일 글을 쓰는 식지 않은 열정이 궁금했다.

스승에게도 스승이 있을 터. 언제부터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느냐는 다소 식상한 질문에 최 시인의 눈빛이 돌연 빨갛게 젖어 들었다. “김열규 선생님…” 최연홍 시인의 문학 연보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유학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쁨보다 어머니와의 난생 첫 헤어짐이 서러워 내내 울었단다. 그리고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맞은 국어 수업에서 선생님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써서 읽게 해 또 한 번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날 이후 선생님은 문학 감성 풍부한 소년을 일찍이 알아봤던지 집으로 불러 방안을 채운 책들을 맘껏 읽게 하고,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며 한 소년의 심장을 뜨거운 정서로 채웠다. 당시 국어 선생님이 바로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로도 유명한 고 김열규 선생이다.

최 시인은 “한국을 떠나기 전 67년도에 인사차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중학교 2학년 때 기차에서 내내 울고 있는 너를 다 지켜봤다고 말씀하시더라”며 문학의 첫 길을 터준 김열규 선생과의 만남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인연이라고 말한다.

최연홍 시인은 수많은 시와 영시, 수필집 등을 발간했다. 그중 생애 첫 번째 시집인 ‘정읍사’(1985)는 한국을 떠나 가난한 시대에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유학생으로 생활했던 청장년 시절의 생활을 담았다. 최 시인은 “이 시기에 쓴 시는 나에게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이라는 초라한 신분을 시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보상받게 해 줬다”고 회상한다. 또 은퇴 후 발간해 어머니 영전에 바친 시집 ‘아름다운 숨소리’(2005)에는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안정적인 미국 생활을 과감히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 어머니 숨소리 곁에서 마지막 7년을 함께한 서럽고도 행복한 시간을 더듬어 한 권의 시집에 엮었다.

최 시인은 “지금도 어머니의 숨소리가 문득문득 그립지만 저 7년의 세월 덕분에 평생의 후회를 조금은 덜었다”고 위로했다.

최근 발간한 시집 ‘잉카 여자’(2016)는 여행길에 만난 이방의 거리에서 느낀 그들의 아픔 어린 삶을 승화된 시적 표현으로 풀어냈다. 이 잉카 여자를 읽은 전 워싱턴문인회장 권귀순 시인은 서평에서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방법을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 이 두 가지라 했다.”며 “여행이야말로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살게 하는 것일진대, 그 기적을 시집 잉카 여자에서 만날 수 있다”고 적었다.

열네 살 문학소년 시절까지 합쳐 인생 대부분을 글과 함께 호흡해 온 최연홍 시인. 이 시인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최 시인은 “내게 문학이란 내 조국을 떠나 잠시 돌아갈 곳은 있어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떠돌이별 같은 나의 처지, 즉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방랑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한다.

‘떠돌이별’, ‘이방인’, ‘떠난 자의 슬픔’. 인터뷰를 진행하며 최 시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떨어지는 표현들을 한데 주워 담으니, 혹여 ‘그리움’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호기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초심 初心

최연홍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유
첫눈에 반한 전율을 간직하고 있는 젊음
빈 손으로 이 세상에 와 먼 항로를 거쳐
마지막 항구에 이르도록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미천한 자에게 아들, 딸을 선물해준 아내
산 하나 남은 고향, 거기 동생들과 친구들
아직도 숲길을 걷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 청각
새벽기도의 미명 속 온화함
당신의 환한 음성을 듣고 있는,
무르익은 봄 벚꽃의 화사한 숨결
맨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발걸음
그 누군가의
뒷모습은
라일락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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