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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거짓 희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모니카 류 / 암 방사선과 전문의
모니카 류 / 암 방사선과 전문의 

[LA중앙일보] 발행 2018/05/03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8/05/02 18:38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합니까?' 내 나이 또래로 보였던 환자의 형은 나를 붙잡고 절규하며 말했다. 그의 남동생이 방금 숨을 거두었던 터였다. 동생은 대학생이었다. 나는 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해 한국의 봄은 유난히 길고 쌀쌀했다. 머리가 지식으로 가득차 설익은 과일 같던 인턴 시절, 나에게 죽음은 하나의 학설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세상을 뜬 젊은이가 겪어 가던 고통스러운 투병 행로에 나는 그저 구경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의사들은, 나를 위시해서, 아이러니 하게도 죽음의 순간에 환자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더구나 요즘은 입원환자들만 치료하는 입원환자 전문의,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전문의들이 있어 암 전문의라 해도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만 환자와 마주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실상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공부하고, 리서치에 가담한다. 어쩌면 환자 자신들보다 더 아파하며 포기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지난 주 당직일 때 방사선 치료를 마친 동료 의사의 환자를 봐 주어야 했다. 데자뷔라고 할까? 열 여덟 살의 흑인 여대생은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일곱 살 때 백혈병에서 완치되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복수가 배에 차기 시작하면서 백혈병이 재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완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알려진 병환 부위 전부를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병환 부위 일부만을 치료한다면 복수는 줄지 않을 것이었다. 부분에만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복수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확률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그녀는 말했다. "복수가 없어지면 나는 골수 이식을 받을 거예요. 복수는 언제나 줄어 들어요?"

동료 의사는 부분 방사선 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 그녀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치료를 끝낸 시점에 여대생의 질문에 그녀가 모르던 혼동되는 답을 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 두고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완치의 길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의사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주치의는 이를 빨리 알려주고 앞날을 대처하는 플랜을 환자와 함께 짜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지 몰라도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놀랍게도 환자는 적응하는 준비를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잘 해 간다. 이런 첫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사들로부터 듣게 되거나, 완치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되면 환자들은 더 많이 당황하고, 화내고, 깊은 우울에 빠질 수 있다.

'거짓 희망'은 오래 가지 않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지 누가 알랴? 어린 여대생을 보면서 참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연륜이 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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