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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가벼운 삶을 추구하며

몽고메리에는 나이 50이 지난 시민들을 위한 월간 잡지가 여럿 발간되어 무료로 배포된다. 종교적인 성향을 가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노후를 잘 사는데 필요한 정보를 많이 준다. ‘Boom!’ 4월호에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공인 감정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No Thanks Mom’ 책에서 발췌한 글은 살면서 모은 살림 대부분이 자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폐물이 되었으니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녀가 설명한대로 생활방식이 바뀌었으니 자손들에게 살림을 물려주던 세태가 변했다.

나도 딸들이 결혼하면 주려고 이것 저것 맘에 드는 동서양 가구나 멋진 본차이나 그릇을 모았다. 특히 군인으로 해외에서 근무할 적에 유럽이나 한국의 고가구들을 구해서 미국에 가져왔다. 더러 가격이 벅찼던 것들도 큰 마음 먹고 사면서 내가 준비해서 주는 물건들이 미래에 딸들의 생활에 사용될 것을 생각하며 행복했다. 오래전 두 딸에게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이 갖고 싶으냐?” 물은 적이 있다. 집안을 한바퀴 돌고 난 후에 큰딸은 “아무것도 없다” 했고 작은딸은 “피아노만 갖고 싶다”했다. 두 딸은 나의 소중한 물품들을 탐내지 않았다. 여러번 권해도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딸들에게 그때 좀 약이 올랐었다.

토박이 친구가 “이것은 할머니, 저것은 엄마에게서 물러 받은 가구”라 자랑하면 나는 만져봤다. 손때가 묻은 살림살이가 대대로 가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부러웠다. 나에게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생전에 사용한 살림살이는 하나도 없고 그저 흐릿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훗날 친구들에게 “이것은 내 엄마가 물러준 것” 이라 말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딸들이 결혼하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결혼한 큰딸이 자기의 짐을 가지러 왔을 적이다. 워싱턴DC에서 사위와 함께 내려와서 작은 Uhaul 트럭을 빌렸다. 책과 옷에 책상을 트럭에 실을 적에 내가 딸에게 주려고 그동안 모았던 물건들을 꺼내어 주었더니 딸과 사위는 슬쩍 보기만 했다. 딸의 물건을 다 실어도 트럭의 사분의 일도 차지 않고 빈 공간이 많아서 딸과 사위에게 우리집에 있는 무엇이든 원하거나 필요한 것은 트럭에 실으라고 해도 두 사람 사양했다. 도시풍 실내장식으로 좀 냉랭한 딸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도와주고 싶어서 지역 화가에게 특별히 주문한 그림도 딸과 사위는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날 그들이 만류해도 나는 영국산 본차이나 세트 두 박스를 트럭에 실어서 보냈다. 훗날 딸네에 가서 보니 그것들이 부엌 싱크대 밑에 밀려 있더니 그 다음 방문해서 보니 아예 없었다. 서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째 사위로 영국인을 맞았을 적에 우습게도 나는 사라진 그 영국산 접시를 아쉬워했다.



그런데 둘째 딸도 큰 딸과 비슷했다. 주려고 보관했던 일본산 이마리 제품과 본차이나 세트를 줬더니 아파트 서랍장이 적어서 둘 곳이 없다며 외면했다. 내가 허용한 집안에 가득한 온갖 물건들이나 가죽 소파는 외면하고 영국서 가져온 고풍의 식탁 세트만 가져갔다. 두 딸은 자기들의 취향이나 생활 의식이 나와 다름을 분명히 했다. 사실 물건을 골랐을 적에 나는 품질 좋은 유명 브랜드의 우아한 상품을 우선했고 미래의 추세나 딸들의 성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훗날 딸들이 거절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특히 단순하고 가볍게 살려는 젊은 세대에게는 아주 고가의 골동품이나 진귀한 물건이 아니면 세계 곳곳의 특산품도 그저 번거로운 물건이다. 딸들에게 거절 당하고 서랍장에서 긴 잠을 자는 물건들은 이제 보물이 아니라 버거운 짐으로 남았다. 더불어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도 많다. 하나하나 모으면서 행복한 추억을 만든 살림살이가 집안 곳곳에 꽉 차있다. 산뜻하게 정리해서 훗날 딸들에게 곤란한 부담을 주지 않고 우리도 노후를 가볍게 살려고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살림의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살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산 만큼 쌓아 모은 것들을 조금씩 제거하니 마치 나의 삶을, 나의 아름다운 과거를 하나씩 해체시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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