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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만든 물건은 사용하지 않아

[LA중앙일보] 발행 2018/05/1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8/05/13 16:07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34)
리운경 가족②

1919년 일제 강점하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소식은 미주에도 바로 알려졌다. 특히 수많은 동포가 자유를 위해 봉기했다는 소식은 미주 한인사회에 그들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19년 일제 강점하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소식은 미주에도 바로 알려졌다. 특히 수많은 동포가 자유를 위해 봉기했다는 소식은 미주 한인사회에 그들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머니·부인·자녀와 리버사이드 거주
일가족이 파차파 캠프 유지하는데 헌신
모친 병원서 번 돈 국가와 사회 위해 사용

1919년 2월 3·1운동 지지하며 성명 발표
4월에는 애국가 부르고 대대적인 경축행사
독립은 남녀에 상관 없는 한인 모두의 소망


◆권업주식회사

1912년 리운경은 권업주식회사 사장이었다.

신한민보 1912년 3월 18일자 내용이다. "광고. 삼가 말씀드리는 것은 본사 주무원 주공 삼씨의 공함을 거한즉, 지난 6월 후로 전답가가 갑절이나 고등한 고로 본사에서 이미 매득한 전답에 년년이 추수하는 이익은 말고라도 5, 60원 한 주에 100원 가량이 될 터이라 하며 본사 농막 근처에 새로 작답할 토지가 있는데 3000원 자본이 있어야 착수하겠다 하였사오니, 이미 고본주 되신 이들은 아모쪼록 고본을 더 내이시며 아직 고주 되지 않으신 첨 동포께서는 기회를 잃지 마시고 속히 고본을 내시와 이익을 얻을 뿐더러 본사를 확장하여 우리나라에 큰 실업이 되게 하심을 바라옵. 권업주식회사 사장 이운경. 회계 류성숙. XXXX bunker hill XXX, Los Angeles, CA, USA."

1912년 6월 9일에 2시간 동안 계속 내린 소나기로 리운경의 딸기밭이 1500원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

'신한민보 1912년 7월 8일자에는 "농산물의 손해. 으렛랜쓰 통신을 거한즉 거월 9일 으렛랜쓰 지방에 전무한 소낙비가 두 점 동안을 폭주하여 각 농산물의 손해가 불소한 중에 우리 동포 리운경 박호근 고원익 3씨의 딸기 밭이 물에 쌓여 1500원 가량의 손해를 당하였다더라"라고 보도됐다.

리운경은 1910년 1월 27일 레드랜드에서 아들을 얻었다.

신한민보 1910년 2월 9일자는 "이씨득남. 으레드랜드 리운경 씨 부인은 거 1월 27일 오후 7시 반에 옥같은 남자를 순산하였는데 모자가 충건하다니 하례하노라"라고 적고 있다.

리운경은 1911년 1월 27일 레드랜드에서 딸을 얻었다.

신한민보 1911년 11월 27일자 내용이다. "이씨농와. 우랠낸스 리운경 씨는 본월 17일에 득녀하였다니 씨는 응당 기뻐하려니와 우리도 그 농와지경을 하례하노라."

리운경이 레드랜드에 살았을 때 이순희라는 딸이 소학교 1반에서 공부했다.

신한민보 1913년 11월 7일자에는 "레드랜드 학생. 가주 남방 우레드랜드에 있는 리운경 씨의 영량 순희는 그곳 소학교 1반에서 공부를 성실히 한다더라"라고 적었다.

◆리버사이드 지방회 활동 (1918~1919년)

리운경은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리버사이드에 거주했다. 부인과 어머니도 리버사이드에서 활동했고 자녀들도 리버사이드에서 학교를 다녔다.

리운경은 1918년 리버사이드 지방회 대의원으로 일했다.

신한민보 1918년 1월 24일자의 내용이다. "리버사이드지방회. 1월 17일 통상회를 열고 의결한 사항이 좌와 같으니, 1. 본 지방 임원은 사임 청원과 출타를 인하여 서기 이하를 좌와 같이 다시 선정한 일. 서기 박일우, 재무 김순학, 학무원 박일우, 법무원 임응빈, 구제원 박충섭, 대의원 이운경…."

리운경은 1918년 2월에 지방회 창립기념절 행사에서 축사를 했다. 리운경은 1919년도 리버사이드 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출됐고 1919년 2월 대한인국민회 창립 축하 행사에서 리버사이드에서 리운경이 연설했다.

리운경이 리버사이드에 거주했던 1918년과 1919년에 여성 가족들인 리운경 모친, 리운경 부인이 활동했다. 리운경과 리운경 모친은 파차파 캠프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차파 캠프 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한 시기인 1918년 이후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기록들을 신한민보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1919년 한인 교회 공의회에서 본국의 동포를 돕기 위한 기금을 모금했을 때 리운경의 모친이 1원을 기부했다. 1919년 6월 14일 기사에서 리운경 모친의 기부금액이 3원으로 정정됐다.

신한민보 1919년 6월 12일자 내용이다. "구제합시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는바 우리 부모국에서는 자유를 위하여 피를 흘려 원수의 손에 죽고 상하고 가치는 자가 부지기수인데 그 가족들은 누가 구호하오릿가? 죽을 때에 임함을 보고도 함마면 함마 우리의 재정이 마르고 모잔하였으나 우리가 돕지 않으면 그 처자가 아직 살았으나 죽을 터이기로 이를 생각하여 본 북미 한인 교회 공의회는 우리 국민회 중앙 총회의 인허로 구제부를 조직하고 의연을 모집하오니 경애하는 형제자매들은 신속히 구휼금을 거두어 본회 재무 리대위 목사에게 보내시오. 회장 민찬호 목사, 서기 한승곤 목사, 재무 리대위 목사. 경비의 경제와 사무원의 부족을 인하여 돈 보내신 이에게 영수증이나 답장은 하지 못하고 다만 돈 받는 대로 성명과 금액을 신한민보에 기재하여 광고하겠사오니 심량하심을 바라나이다."

1919년 4월에 리운경 부인은 리운경 모친과 함께 각각 10원씩 부인애국단에 연조했다. 신한민보 1919년 4월 19일자는 "부인애국단. 허승원 부인 10원, 구정섭 부인 10원, 리운경 모친 10원, 리운경 부인 10원" 1919년 4월에 리버사이드 지방회에서 신정부 조직 경축 행사를 열었다.

구정섭 부인이 애국가를 부르고, 박충섭 부인과 전락청이 연설하였고, 리운경 모친이 기도하였다. 리운경의 모친은 나이 60살에 병원 일을 하여 번 돈을 사회와 국가에 쓴다고 했다.

1919년 9월 18일 '신한민보'는 "9월 16일 리버사이드 지방 한인 부인들은 일반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남자들과 같이 하기로 하였다 하니 참 장려할 만하고 특히 리운경 씨의 대부인은 60 당년에 병원에서 고역을 하여 버는 돈을 우리 사회와 국가에 다 쓴다 하니 참 그 열성은 모범할 만하더라. 또한 그 지방에서는 각각 한인들의 집에서 간장을 만들어 쓰는 고로 일인의 장을 쓰지 않고 일반 일인의 물화를 모두 배척한다더라"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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