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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러에 뺏긴 자주외교…113년 설움 풀었다

정효식 특파원
정효식 특파원

[LA중앙일보] 발행 2018/05/16 미주판 2면 기사입력 2018/05/15 22:25

대미 외교 상징 대한제국공사관
1891년 고종, 황실자금으로 매입
1905년 외교권 잃고 공사관 폐쇄
정부서 환수, 원형 복원 뒤 공개

6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친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내부의 1층 접견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구한말 당시 접견실 모습. 정부는 2012년 350만 달러에 이 건물을 환수했다. 오는 22일 역사유적 기념관으로 공식 개관한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6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친 미국 워싱턴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내부의 1층 접견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구한말 당시 접견실 모습. 정부는 2012년 350만 달러에 이 건물을 환수했다. 오는 22일 역사유적 기념관으로 공식 개관한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북동쪽으로 약 0.9마일 로건서클의 위쪽 출구에 빅토리아 양식의 지하 1층, 지상 3층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다. 13번가 1500번지. 1889년 구한말 외교관들이 처음 입주했던 130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이다. 1910년 일제에 단돈 5달러에 빼앗긴 건물을 2012년 350만 달러에 환수해 6년에 걸쳐 철저한 고증과 원형 복원공사를 마쳤다. 오는 22일 근대 대미 외교를 상징하는 역사유적 기념관으로 정식 개관한다.

14일 미리 찾은 공사관은 건물 앞 교통신호등과 표지판을 제외하면 옛날 사진과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태극 문양이 새겨진 감색 철제 현관도 그대로 재현됐다. 건물 오른편 주차장터엔 꽃담과 불로문을 세우고 박석을 놓아 작은 한국식 정원을 새로 조성했다.

공사관엔 힘없는 소국 조선의 좌절과 망국의 회한이 서려 있다. 1888년 1월 초대 공사 박정양은 부임 당시엔 '피셔 하우스'라고 불리는 인근 15번가 일반 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박 공사는 조선의 자주 외교를 막으려던 청나라의 압박에도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단독 접견해 고종의 국서를 전달한 것이 빌미가 돼 이듬해 위안스카이에 의해 소환당했다. 그 뒤 2대 서리공사 이하영이 현재의 공사관으로 옮겼다. 고종은 조선의 자주성을 보이려고 1891년 당시 황실 자금인 내탕금의 절반인 2만5000달러를 들여 공사관 건물을 사들였다. 해외 공관 중 유일한 조선 정부 소유 건물이었다.

철제 지붕이 있는 현관을 지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 식당 입구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고, 왼쪽으론 비단 의자와 소파, 병풍, 태극 문양의 쿠션이 화려하게 꾸며진 접견실이 나타난다. 그곳 탁자 위엔 9대 공사인 이범진 부부와 차남 이위종의 어린 시절 모습의 사진이 놓여 있다. 이위종은 1896년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워싱턴에 와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아버지가 백악관·국무부를 오갈 때 통역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가 11년 후 1907년 이준·이상설 열사와 함께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던 것도 유창한 외국어 실력 때문이었다.

2대 이하영은 고종의 어의(御醫)이자 초대 박 공사의 미 정부 안내 역할을 맡았던 호러스 알렌의 통역 출신이었다. 초대 박 공사와 다른 공관원이 소환당하자 일약 공사에 올랐다. 그는 조선에서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미국의 파병을 성사시키라는 고종의 밀명을 받아 움직였다. 미 정계 파병 로비를 위해 거액의 차관을 얻어 공관에서 연일 성대한 연회를 열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부인 프랜시스가 처음으로 해외 공관 연회에 참석한 모습은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고립주의인 먼로주의 노선에 따라 고종의 요청을 거절했다. 고종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덕분에 이하영은 미국 사교계 스타 반열에 오른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3대 공사는 이완용이었다. 4대 공사이자 이후 한성판윤을 오래 지낸 이채연은 매일 본 공관앞 로건서클을 본떠 한성부(시청) 앞에 로터리를 만들었다. 이게 서울광장의 원형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으며 공관은 폐쇄됐다. 1910년 경술국치 3일 뒤 우치다 야스야 주미 일본공사는 형식적으로 5달러에 이 건물을 산 다음 그 자리에서 1분 뒤 미국인 호레이스 K 풀턴에게 10달러에 팔았다. 이후 이를 되찾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오수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소장은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차례 현장을 방문해 기사, 칼럼, 저서를 통해 공사관의 존재와 독립 외교의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며 환수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공로로 박 대기자는 2013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오 소장은 "100여 년 전 외교문서 및 사진, 신문 마이크로필름 등을 토대로 한 철저한 고증작업을 통해 원형대로 복원했다"며 "직원 숙소이던 3층은 대미 외교사와 공사관 역사, 대한제국과 공사관 환수운동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22일부터 휴무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에 무료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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