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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난(亂)인가 혁명인가

[LA중앙일보] 발행 2018/05/18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8/05/17 19:57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명칭 또한 이긴 자, 힘 가진 자의 논리에 따라 붙여진다. 하지만 역사의식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과거의 명칭이 새롭게 바뀌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것들이 꽤 있다.

1894년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은 오랫동안 '동학란'으로 불렸다. 동학교도가 세상을 어지럽힌 반란이라는 뜻이다. 당시 조정을 이끌었던 민씨 일파와 개화파 정권, 동학군 진압에 나섰던 일본군, 심지어 지식인이라던 유림들조차 그렇게 인식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연구가 쌓이면서 동학농민봉기, 동학농민전쟁, 농민운동운동 등 다른 이름도 쓰이기 시작했다. 북한에선 계급투쟁적 측면을 강조해 '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부른다.

눈에 띄는 것은 1961년 5·16 이후의 명칭 변화다. 동학의 사회 변혁 의지에 주목한 집권 군부는 "우리나라의 혁명은 5·16과 동학뿐"이라며 '난(亂)'을 '혁명'으로 격상시켰다. 1963년에 전북 정읍 덕천에 세워진 갑오동학혁명기념탑, 1973년 공주 우금치에 건립된 동학혁명군위령탑은 그런 인식 변화의 산물이었다.

2004년 국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은 국가 공인 명칭이 됐다. 그렇지만 주체 세력, 전개 과정, 이념적 지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전히 다양한 조합의 이름으로 불린다. 120년도 넘은 과거사지만 그 평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말이다.

#. 오늘 38주년을 맞는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처지가 비슷하다. 동학란이 그랬던 것처럼 '1980년 광주' 역시 처음에는 소요사태, 폭동 등으로 불렸다. 당시 집권 신군부와 그 통제를 받던 대부분의 언론 보도가 그랬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큰 진전을 이루면서부터 명칭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군사정권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운 점을 부각해 민주항쟁으로 부르는 이가 많아졌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을 언급한 공식 담화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했다. 같은 해 국회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내 건 진상조사 특위가 설치됐다.

2011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5·18을 지칭하는 국내외 공식 명칭이 되었다.

그럼에도 해마다 5월이면 논란은 재연되고 있다. 관련자들은 재판을 받았고 국가 차원의 희생자 보상도 이루어졌지만 '민주화운동'이란 용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어서이다. 게다가 군부 당사자들조차 부인한 북한 개입이라는 '가짜 뉴스'를 철석같이 신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겐 우리 정부 발표도, 어떤 확실한 증언이나 진상 규명도 소용이 없다. 그저 처음 각인된 대로 5·18 광주는 영원한 '폭동'이요 '반란'일 뿐이다.

#. 지난 사건을 바르게 기억하고 그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는 것은 후손된 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는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 특히 사건에 참여하고 연루된 사람들의 삶을 바르게 평가하는 일과도 직결된다. 과거 일본이 얼마나 많은 잘못된 용어로 우리 역사를 왜곡했는지만 생각해 봐도 역사 용어 바로 쓰기가 왜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과거 사건의 호칭 또한 바뀔 수 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분명히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나마 자유와 민주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날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의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이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역사라도 함부로 조롱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학도, 광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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