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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님비가 아니라 나임비

님비란다. 우리가.

노숙자 셸터 건립에 반대하는 한인들의 목소리가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ot In My Backyard)'는 지역이기주의란다. 한국의 한 언론이 '한인타운이 님비를 벌이다가 된서리를 맞았다'고 보도한 내용이다. 된서리라는 단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방관자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 한 건의 기사는 지난 2주간 꼬박 이 문제에 매달려온 사회부 기자들에게 말 그대로 된서리였다. 사전에 적힌 대로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였고, '모진 재앙'이었으며 '타격'이었다. 기사 때문에 된서리를 맞았지만 잘 모르고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겉핥는 기사' 작성자는 물론이고 우리가 님비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잘 모르고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려고 한다.

한인들을 비롯해 한인타운에 살고, 일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노숙자 셸터를 짓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공분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에릭 가세티 시장과 한인타운 지역구(10지구) 시의원인 허브 웨슨 시의장의 일방적인 결정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 2일 타운 7가와 버몬트 인근 시 소유 공공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기에 셸터를 세운다"고 발표했다. 단 한 번의 공청회, 단 한 줄의 공지조차 없이 이미 그들끼리 결정한 일이었다. 발표를 들은 순간엔 잠시 멍했다가 점점 화가 밀려왔다. 비상식적이고 교만하기까지한 발표여서다.

식당을 개업하는데도 준비해야 할 서류와 거쳐야 할 절차가 산더미다. 그 첫 단계가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의회에서 허가부터 받아야 한다. 비단 식당도 그럴진대 LA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라는 노숙자 문제의 해결책으로 임시 셸터를 설치하면서 시장과 시의장이라는 사람들이 가장 기초적인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다.

절차상 하자에도 불구하고 만약 결과물이 합리적이라면 이 정도까지 비난을 받진 않았다. 웨슨 시의장은 셸터 장소를 타운으로 결정한 이유가 "내 지역구내 노숙자가 가장 많은 곳이 타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통계를 공개한 적 없다. 그래도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 장소가 적절한가 따져봐야 한다. 셸터 부지 주변에 학교가 5개다. 그중 하나가 4200여명이 재학중인 로버트 케네디 스쿨이다. 수천 명이 넘는 아이들은 등하굣길에 노숙자들과 마주쳐야 한다. 부모들의 걱정이 그저 기우인가.

주변의 식당 등 업소들도 속이 탄다.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어떤 손님이 노숙자 셸터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을 가겠는가. 셸터 부지와 맞닿은 중식점에는 지금도 하루에 몇 차례씩 노숙자들이 불쑥 가게로 들어와 행패를 부린다. 돈을 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단다. 이 식당 업주와 종업원은 모두 여성이다. 셸터가 들어선다면 말 그대로 재앙이다.

가세티 시장은 "셸터 주변이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24시간 감시하기 때문이란다. 본인 말대로 LA 역사상 최초의 임시 셸터다. 한 번도 유사한 시설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도 감시가 안전을 보장한다는 1차원적 발상을 도대체 어떻게 치안 대책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가세티 시장은 "3년만 임시로 운영될 것이고, 만약 실패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셸터를 철거하겠다"고 했다. 세계적인 대도시 LA의 시장이내놓은 대책이 "해보다 안되면 접겠다"는 것인가.

물론 '대의를 위해서는 타운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방관자 입장에서 한인들이 님비를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타운의 아픈 역사가 있다.

1992년 터진 LA폭동이다. 당시 시정부와 주류언론들은 폭동의 원인을 '한흑간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에 가뒀다. 백인 경찰관들의 흑인 폭행으로 촉발된 폭동에 애꿎은 우리 한인들이 희생됐는데도 말이다. 26년이 지난 지금 그 프레임이 재현되고 있다. 웨슨 시의장은 한인들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흑백 논리로 무마시키려 하고 있다. '노숙자들의 생명을 살리자'면서 셸터 설치 찬성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한인들의 반발을 마치 셸터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한인들이 하고 싶은 말은 님비에 한 단어만 추가하면 될 듯 싶다. '더 이상 한인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Not Anymore In My Backyard·NAIMBY)'.

이래도 님비인가. 우리가.


정구현 사회부장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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