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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기획인터뷰] 금강경 가르치는 김원수 선생

백성호(vangogh@joongang.co.kr)
백성호(vangogh@joongang.co.kr)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5/20 19:04

“‘헬조선’이란 생각도 허상이다. 분별이 가져온 허상이다. 그걸 깨달을 때 우리에게 가능성이 생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14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바른법연구원을 찾아갔다. 큰 도로에서 좁다란 농로를 따라서 잠시 들어가자 야트막한 언덕에 세워진 수행처가 나타났다. 바른법연구원이었다. 거기서 김원수(75ㆍ바른법연구원 이사장) 선생을 만났다.

그는 직장인과 주부 등 재가자를 대상으로 20년 넘게 ‘금강경’을 가르치고 있다. 단순한 경전 공부가 아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체화하고,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게끔 ‘실전형 공부’를 가르친다. 그곳에서 만난 남녀 회원들은 “오랫동안 불교 공부를 했다. 법문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솔직히 불교를 잘 몰랐다. 그런데 불교가 ‘내 안의 가능성과 지혜를 개발하는 공부’라는 걸 이곳에서 처음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선생에게 물음을 던졌다.


김원수 선생은 "불교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심이 깊다고 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불교의 이치에는 틀이 없다. 더 낫고, 못하고가 없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부처님오신날이다. 붓다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서다. 왜 그렇겠나. 자기만 보호하며 살려고 하니까. 자기 이익, 자기 본능만 충족시키려고 하니까 그렇다. 그런 마음이 ‘좁은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살면 자꾸 충돌이 생긴다. 결국 스스로 자신에게 해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방법을 일러주려고 부처님이 이 땅에 왔다.”

-어떤 방법인가.

“자신을 내려놓는 삶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해만 보는 삶, 양보만 하는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런데 그쪽으로 가다 보면 ‘넓은 마음’이 드러난다. 그와 함께 내 삶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바른법연구원의 한 켠에는 고(故) 백성욱(1897~1981) 박사와 백 박사의 스승인 손혜정(1882~1959) 보살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백 박사는 한국 불교계의 큰 기둥이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한국인 최초의 독일 유학생이었고, 머리 깎은 출가자이면서도 이승만 정부의 요청으로 내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동국대를 설립해 총장과 이사장을 역임했고, 금강산에 단신으로 들어가 동굴에서 수도에 매진하기도 했다.


백성목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백성욱 박사. 뒤편의 기둥에 '백성목장'이라고 쓴 한자가 보인다. [중앙포토]


김 선생은 지금도 애틋하게 스승인 백 박사를 기린다. 그는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군대에 갔다. 학창 시절에는 불교 서적을 탐독하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제대하고 백 박사를 만난 뒤 자신의 불교관이 무너졌다고 했다.

-어떻게 무너졌나.

“겉으로만 얌전한 척할 뿐이었다. 내 안에 있던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보게 됐다. 딱 100일만 해 볼 참이었다. 당시 백 박사님이 꾸린 경기도 부천 소사의 백성목장으로 일종의 ‘출가’를 했다. 밤과 새벽에는 ‘금강경’을 공부하고, 낮에는 목장에서 소젖을 짜며 일했다. 100일로 생각했던 출가 생활은 4년간 이어졌다.” 그에게는 수행의 나날이었다. 그게 ‘금강경’ 공부의 초석이 됐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게 말이 쉽지,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이 상당수다. 비법이 있나.

“비법은 없다. 다만 ‘정말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는 오류투성이구나’‘나는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빙의되어 있구나’라는 걸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때부터 내려놓아 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려놓음’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

-어떤 착각인가.

“내려놓음이 나를 희생하고, 참고,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내려놓음은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는 일이다.”


김원수 선생은 "'금강경'을 알려면 뜻을 알아야 한다. 읽기만 해서는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뜻을 알았다면 실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 몸에 배어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전교생 600명 중에서 300등 하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나는 영원히 1등은 못해. 해도 안돼’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그게 엄연한 팩트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늘 ‘이건 돼, 이건 안 돼’하는 마음이 있다. 저도 처음 목장에 갔을 때 일을 못할 줄 알았다. 일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안 된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쳐버렸더니 일이 되더라. 그게 내려놓는 거다. 똑같다. 그 학생도 ‘안 된다’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쳐버리면 된다. 그럼 ‘나는 중간만 한다’‘1등은 영원히 못해’라는 생각이 점점 옅어진다. 그리고 노력이 뒤따라가는 걸 보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안 되던 일이 되게 된다.”

-그게 불교인가.

“그렇다. 그게 바로 불교다. 그렇게 자꾸 가다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팩트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관념이자 착각임을 깨닫게 된다. 불교는 그런 장벽을 깨고서 본래부터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마음껏 개발하는 일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지혜롭게 사는 거다. 그런 식으로 불법을 생활화해야 한다.”


김원수 선생은 홍익대 재료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8년 퇴임했다. 그보다 앞선 2003년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을 설립해 ‘금강경’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자신이 살던 집을 내놓았다. 그곳에 ‘하심정(下心亭)’이란 이름의 무료급식소를 세웠다. 지금껏 15년째 연인원 30만 명에게 점심을 나눠주고 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ㆍ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베푸는 일)를 몸소 실천하며 자신을 점검했다.


김원수 선생은 "백성욱 박사님에게는 스승이 있었다. 손혜정 보살이다. 학력은 없었지만 깨친 안목이 있는 분이셨다고 한다. 백 박사님은 손 보살님의 가족과 함께 주택의 1층과 2층에 살면서 평생 가까이서 스승을 모셨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스승인 백성욱 박사는 생전에 남북통일에 대한 예언을 남기기도 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통일이 된다고 했다. 스승님도 그렇게 얘기했고, 탄허 스님도 그렇게 얘기했다. 두 분은 친분이 두터웠다. 연배는 스승님이 더 위였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강해지고, 중국이 분열되고, 만주땅이 한국에 편입되고, 일본은 세력이 점점 약해진다고 했다. 한국이 세계 중심 국가가 된다고 예언했다. 1975년 포니 자동차가 처음 나왔다. 그때 스승님이 ‘봐라. 중국으로 자동차가 쏟아져 들어간다’고 했다. 당시에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더라.”

현재 네이버 카페 '바른법연구원'에서 공부하는 회원 수는 약 1750명이다. 김 선생은 마포의 하심정과 고양의 바른법연구원에서 '금강경'을 가르치고 있다. 하심정에서는 일요일 오전 9시30분에 법문과 공부를 하고, 고양의 바른법연구원에서는 금·토·일 2박3일에 걸쳐 주말 출가를 한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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