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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선생님 얼굴의 '분가루'

[LA중앙일보] 발행 2008/04/1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4/09 17:10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잘 자라고 머리도 좋은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책읽는 것은 질색이고 아무리 가르쳐도 실수연발이었다. 무엇을 읽을 때 잘못 읽고 단어를 바꾸거나 빼먹고 읽었다. 소리를 내서 읽거나 속으로 읽거나 모두 이해가 느리고 엉뚱하게 이해를 했다.

소년은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는 것을 더욱 피했다. 2학년이 돼도 읽기를 못하는 소년은 학교가 싫어졌다. 이를 눈치 챈 담임선생님은 수업이 다 끝난 후에 소년을 자신의 옆에 꼭 껴안고서 차근차근 아주 쉬운 기초부터 가르쳤다. 물론 부모님을 통해서 시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게다가 다른 병도 없고 수학은 잘하니 게으르거나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님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분가루'가 얼굴에서 떨어져 자신에게 날리던 것을 이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늘 기억하였단다. 왜냐하면 이 선생님의 특수 지도와 사랑의 힘으로 그는 읽기를 배웠고 드디어 대학교에 까지 갔기 때문이다.

그토록 읽기를 싫어했던 소년은 하버드 대학의 영문과를 택했다. 그러나 읽기는 배웠어도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매사에 분주한 그를 보고서 영문과 교수는 의과대학을 추천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정신과 의사 수련을 받던 중 그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즉 자신은 '주의 산만증' 증세를 가졌고 어린 시절에 고생한 '읽기 장애'는 별개의 정신과 질환이었다.

그가 쓴 책 'Driven to Distraction'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서 쓴 자신의 이야기다. 각성제 약품을 쓴 이후에 그는 인생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마치 근시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드디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처럼 '주의 산만증' 증세가 있는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학습 장애' 특히 '읽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그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다. 그 중 2명이 '주의 산만증' 증세가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주의 산만증' 치료나 학습 장애를 도와주는 일에 혼신을 쏟는다.

이 의사(E. Holloway M.D.)처럼 시각이나 다른 신체적인 장애가 없고 지능이 괜찮은데도 공부를 못하는 증세를 '학습 장애'라고 정신과에서는 부른다. 우리가 자란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병이다. 특히 다른 과목은 잘 하는데 읽기만 못하면 '읽기 장애' 수학이 특히 뒤떨어지면 '산술 장애' 등으로 부른다.

두뇌의 성장과 함께 차차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나아질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고통은 심하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직장을 구하거나 아니면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다. 사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5000여 년 전 그것도 종교인이나 정치적인 용도로 쓰였을 뿐이다.

그러다 이제는 생명처럼 중요하게 되었다. 글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고 감정이고 인생의 계획이다. 오죽하면 의사들 사이에서는 "써놓지 않은 진료 행위는 하지 않은 행위이다"를 철칙으로 삼을까.

인간의 몸 특히 두뇌는 수만 년에 걸쳐서 진화되어 왔다. 5000여 년의 짧은 시간동안에 비록 재빨리 적응이 안 되고 '읽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일찍 발견해서 참을성 있게 도와주자. 그것이 이 문명사회를 이룩해 놓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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