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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성직가가 되고 보니, 때로는 자의로, 때로는 타의로 글을 써야 할 일들이 간혹 생긴다. 글 쓰는 일은 '맨 정신에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만큼이나 필자에겐 난감한 일이었다. 고육지책으로 택한 방법이 당시 유명했던 작가들의 글을 문장 전체, 때로는 문단 전체를 통째로 인용하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가 쓰던 글은 물론 학술 논문도 아니었고, 누구나 알만한 주요한 신문이나 잡지에 싣는 것도 아니었지만, "표절"에 대한 자책감은 한동안 필자를 주눅 들게 했고, 간혹 누군가로부터 글 잘 읽었다는 인사라도 들을라치면, 부끄러움에 한동안 몸 둘 바를 모르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와 같은 말이 내게 근사하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표절, 좋게 말해 모방을 하다 보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원전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도 꽤나 적절하게 그 분들의 글 솜씨와 문체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에 나의 스타일이 더해지면서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문체가 만들어졌다.

조용필, 이선희, 신승훈씨는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가수이다. 그들의 인터뷰에서 대 가수들 역시 처음엔 모창에서부터 노래연습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전문 가수들이 신인가수들에게 모창연습을 권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라 생각한다. 근대 산문가인 이태준님은 완당의 서체를 모사해 보면서, 그의 필력, 필체, 필의를 체감할 수 있었다며 모방의 미덕을 설파했다.

필자의 경우도 간혹 아마추어 분들이 쓴 글들 중에서도 프로작가와 구분이 어려울 만한 훌륭한 글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필사를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로작가의 글은 필사를 해 보아도 역시 훌륭하지만 아마추어 작가의 글은 부적절한 어휘나 조사, 문장의 호응 불일치, 논리의 엉성함이 필사를 할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남방불교에서 경전암송은 불가의 주요한 수행법 중 하나이고, 현대 교육학자들도 과거 암기위주의 서당식 교육을 능가하는 학습법이 지금도 흔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과학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우습게 생각하는 경전암송이나, 서당식 학습법에서 모방의 교육적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게 하는 대목이다.

경전에 "명필이 되기로 하면 먼저 명필의 필법을 체 받아서 필력을 잘 길러야 하듯이 성자를 이루기로 하면 먼저 성자의 심법을 체 받아 일일 시시로 마음을 잘 길러야 하나니, 우리는 옛 성현의 심법을 큰 쳇줄(습자習字의 본보기가 되는 한 줄의 글씨) 삼고 경전의 말씀대로 꾸준히 실행하여야 할 것이니라."

마음공부에 있어서도 모방의 미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신인가수가 모창연습을 하듯, 서예 지망생이 완당을 모사하듯, 작가 지망생이 셰익스피어를 필사하듯 스승님과 경전을 정성스럽게 모방해 보면 어떨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성자의 심법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을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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