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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싱가포르식 법치

[LA중앙일보] 발행 2018/06/08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8/06/07 20:03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의 다민족 국가다. 인구는 580만 명. 그중 외국인이 160만 명이나 된다. 나는 싱가포르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그래도 뉴스나 책, 여행 후기 등을 통해 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부자 나라, 치안이 잘 유지되고 거리는 깨끗하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엄격한 법치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 등이 그것이다.

중국 고대 법가(法家) 사상의 원조 한비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법이다. 자애롭기만 하면 법령이 서지 못하고 형벌이 확실하지 않으면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진시황은 이를 적극 받아들여 사상 첫 중국 통일 왕조를 세웠다.

현대 국가 중에선 법가 이론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싱가포르이지 싶다. 마약 사범은 곧바로 사형에 처해진다거나 거리에서 껌을 씹거나 변기 물을 안 내려도 처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꽤 많이 들었다. 언젠가 JTBC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싱가포르인 출연자가 "싱가포르에선 운전 중 코를 후비면 80만원 벌금"이라 했던 말도 기억난다. 안전운전을 위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도록 그렇게 한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래도 대단한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가진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작은 나라가 주변 큰 나라 사이에서 발전하고 독립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법을 엄격히 적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방 외국인들은 이런 법치가 꽤 불편한 모양이다. 1993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태형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18세였던 마이클 페이라는 미국 학생이 싱가포르에서 차량 50대에 빨간 페인트로 낙서를 했다가 체포돼 4개월 감옥, 2200달러 벌금에 6대의 태형까지 선고받았다. 태형이란 동아시아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 5가지 형벌 중 하나로 나무 작대기로 볼기를 내려치는 형벌이다. 오형(五刑) 중 가장 낮은 단계라지만 한 대맞 맞아도 엉덩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이고 흉터는 평생 간다니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 미국인이 두들겨 맞게 됐다는 소식에 미국 조야가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인권을 들먹이며 사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총리는 "법을 어기면 미국인이라도 예외 없이 합당한 죄값을 받아야 한다"며 거부했다. 다만 직접 전화까지 한 미국 대통령의 체면을 생각해서인지 2대는 깎아주긴 했지만 손바닥만한 나라가 세계적 부국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개최지가 되면서 요즘 다시 싱가포르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큰 관심을 가진 나라는 북한일 것 같다. 체제 보장과 경제 발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는 북한으로선 미래의 국가 모델로 싱가포르만한 나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래 지금까지 사실상 일당 독재를 유지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인 총리 일가가 정계, 재계 등 국가 요직을 두루 휘어잡고 있는 것도 솔깃할 것이다. 철권 통치로 25년이나 권좌에 있었지만 기적적인 경제 부흥을 이끌어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1923~2015) 전 총리, 2004년부터 14년째 집권 중인 그의 장남 리셴룽(李顯龍)현 총리, 그리고 그 아들 역시 장차 유력한 총리감이라고 하니 3대 세습의 북한으로선 더욱 각별할 것이다.

허구한 날 총기사고, 인종혐오범죄 등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미국도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싱가포르식 법치는 한 번쯤 연구해 보면 좋겠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돈 있고 권력 있으면 얼마든지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나라라는 오명도 싱가포르식 법치가 해법일 수 있어서이다. 물론 방점은 사형, 태형같은 반인권적 형벌이 아니라 '법 앞에 만인 평등'이라는 정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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