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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짝사랑 환자'

[LA중앙일보] 발행 2008/05/0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5/04 16:44

수 잔 정 <카이저 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그러면 안 되는 줄 저도 알았어요. 그러나…"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50대 백인 환자는 콩팥과 간을 동시에 이식 받고서 5년째 열심히 살아가는 은퇴한 공무원이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마음이 혼란했다. 자신을 열심히 진료하고 치료해주는 내과 전문의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가 곧 결혼을 한다는 소문을 접한 이후부터이다.

그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카이저 컴퓨터 사이트를 통해서 그는 한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억제하기 어려운 자신의 마음을 써서 보냈다. 현명한 내과 전문의는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를 보도록 권해서 그가 오늘 나를 찾게 된 것이다.

환자의 과거력을 자세히 물어보니 장기 이식 수술 이전에 음주벽이 심했었다고 한다. 심각한 간경변증이 올 때까지 그는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을 마신 주원인이 자신의 우울 증세와 기복이 심한 정서불안 때문이라는 것이 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밝혀졌다. 즉 '주요 우울증'이나 '양극성 질환' 등의 정신과적 질병이 하나 있고 음주 중독 증세가 또 다른 정신병의 하나이다.

'이중 진단(Dual Diagnoses)'을 의심하면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중독 증상 치료를 한시 바삐 서둘러 받게 한다. 약물(술도 이에 포함)에 이미 젖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 어떤 정신적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취한 사람에게 항우울제나 항정신제를 동시에 주면 심한 경우에는 두뇌의 호흡 중추가 잠이 들어버리게 되고 무의식적인 코마 상태로 빠질 위험도 크다.

이즈음 현명한 마약 상담가들은 정신과 약물 복용을 권장한다. 술이나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이 필요한가!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병이 심한 상태에서는 이런 의지력이 약해진다. 그러니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감정의 병들을 치료하지 않고서 마약을 끊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나의 환자는 신장부전증까지 일으켰고 드디어는 두 개의 장기를 모두 다른 기증자에게서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술이 없는 인생을! 그러니 '말짱한' 정신으로 인생을 직시해야 하고 술이라는 마취제에 더 이상 의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내부에 잠복해 있던 우울증세와 비록 심하지는 않지만 조증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정서의 변화 누군가에 대한 성적인 충동 그에 따라오는 분노 및 불안 증세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자신에 대한 미움과 연민 자살 충동 등등. 혹시나 유전적으로 '조울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진단을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항정신제와 정서안정제(Mood stabilizer)를 투약하였다. 환자는 본인의 '충동적 행동'에 대해서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는 대신에 조울증 치료에 전념하기로 약속했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모하는 의사를 잃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앞으로 나와 상담을 계속하고 약물 복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병이 얼마나 서로 연결되고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이 젊은 여의사에게 나는 깊은 사의를 표했다. 우리가 동시에 치료하는 이 환자를 위해서 의사들끼리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강조하면서. 지난 24년간을 몸담아온 이 병원의 파트너들이 더욱 자랑스러워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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