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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환경서 사회 바라보던 보수, 변하는 데 시간 걸릴 것”

김승현
김승현 기자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6/14 09:01

최장집 교수가 말하는 ‘6·13 민심’
쳇바퀴식 이념갈등, 반대 위한 반대
옛날 보수론 안돼 … 계몽 보수로 가야

과거엔 정당 돌아가며 정권 나눴지만
이젠 실력대로 사는 시기 접어들어

보수의 참패는 진보 진영에도 위기
여당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 진영의 지방선거 완패는 예견된 일이었다“며 ’보수가 더 온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보수 야당에 초유의 패배를 안긴 6·1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14일 “옛날 같은 보수는 안 된다. 더 계몽되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보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교수는 한국 정치학계의 석학이자 진보 진영의 거두다. 진보 학자임에도 진보 진영에 대한 날선 지적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이날 보수를 향해선 담담하지만 분명한 조언을 남겼다.

최 교수는 보수를 포함한 한국 정치 전반을 향해 “이젠 실력대로 사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보수가 바뀌지 않으면) 낮은 수준에서 쳇바퀴 돌듯이 이념 갈등, 반대를 위한 반대만 되풀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단 이번 지방선거에 앞선 지난해 조기 대선 결과가 보수 진영에는 오히려 더 궤멸적이었다는 판단을 내비쳤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해 촛불집회와 조기 대선이 한국 정치에 미친 충격과 변화가 드러나는 첫 선거였다는 분석이다. 최 교수를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나 보수 야당을 진단했다.


Q : 보수 야당은 왜 참패했나.

A :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촛불집회와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큰 변화와 (시기적으로) 너무 가까웠던 선거였다. 당시의 궤멸적인 패배보다 이번이 더 ‘궤멸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는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Q :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사퇴했다. 보수 진영에 변화가 올까.

A : “보수 인사의 행태나 정당의 노선 때문에 ‘보수를 지지할 수 없다’는 패턴이 관찰됐다면 이건 큰 변화다. 선거 패배가 홍 대표에게 책임이 있지만 사퇴한다고 해서 한국의 보수가 굉장히 바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보수─진보를 나눌 때 경제나 노동 문제, 남북 문제 등에 대한 표현 방식으로 살피는 것처럼 실제 투표자들의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는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경쟁하는 후보가 뭘 하겠다는 건지, 차이가 뭔지, 우리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건지를 판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Q : 그래도 보수 정당들이 완패했으면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A : “옛날 같은 보수는 안 된다. 더 계몽되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보수로 나아가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낮은 수준에서 쳇바퀴 돌듯이 이념 갈등, 반대를 위한 반대만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가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안정된 가정에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다가 새로운 체제를 바라보게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Q : 보수의 문제는 동시에 한국 정치의 문제 아닌가.

A : “한국의 정치인은 안이하다. 좋은 시절에, 정당이 돌아가면서 선거로 정권 잡고 나눠 먹었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호막들이 다 벗겨지고 있다. 실력대로 사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너무도 새로운 문제들이 짧은 시간에 예기치 않게 닥쳐왔다. 그런데 정치는 아무 준비가 안 된 채로 이걸 맞이하고 있다. 공교롭게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급변하는 시기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치러졌다.”

최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보수가 해체될 것으로 예상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을 내놨다.


Q : 이번 선거를 정치 지형이 바뀌는 정초선거(定礎選擧)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A : “정초선거는 어떤 정치적, 사회·경제적 이유로 유권자가 재정렬·편성되거나 정당 체제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다수당 체제의 등장을 설명하는 이론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개념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가 큰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정당 체제까지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Q : 급변하는 남북관계가 선거에 영향을 줬다.

A : “문 대통령이 용기 있게 새로운 대북 정책을 추구한 공이 있다. 문제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보수·진보 모두 전쟁 위협을 느낄 정도로 걱정을 하는 상황이었다가 극적으로 반전됐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점은 문재인 정부엔 행운이었다. 그러나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의 결과물이다. 보수·진보 진영 모두 대전환의 시대가 부여하는 의미가 뭔지 성찰하고 대비하지 못했다. 그동안 없던 영역이 새로 우리 앞에 등장한 상황이고, 그래서 앞으로의 정치가 더 중요해졌다. 지금 아무런 준비 없이 변화 앞에 던져진 것은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Q : 12년 전(2006년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완패)에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던 민주당이 반대의 상황을 맞았는데.

A : “대통령제는 독식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정치 형태다. 거기에 여당이 지방선거까지 완승했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으면 무조건 팽창한다. 물리적인 법칙과 같은 것이다. 한쪽 힘이 강해지면 막는 힘이 있어야 한다.”


Q : ‘양손잡이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보수의 참패는 진보 진영에 위기도 될 수 있다는 뜻인가.

A : “앞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과제다. 압도적인 대승에 취해서는 안 된다. 과거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듯이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남북 평화 공존과 새 국제 관계는 진보를 대표하는 이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합의(consensus)를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경제 문제도 보수와 진보의 상호 협력 없이는 안 된다. 맨날 법령으로 명령한다고 자유 시장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촛불의 결과를 문재인 정부가 배타적으로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앞으로는 다른 정당들과 공조 관계를 구축하고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최장집(75) 교수는
진보 정치학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정치학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미 코넬대·스탠퍼드대 방문 교수 등을 지냈다. 보수의 오른손과 진보의 왼손이 경쟁하면서 협력하고 타협할 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양손잡이 민주주의’ 이론을 주창했다.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구조적 문제점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평가된다.


김승현·김정연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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