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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칼럼] 아버지

올해도 6월 17일이 아버지 날이다. 금세기 들어 불쌍하게 말라가는 아버지의 위상에 저항감도 든다.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는 나한테 이거 문제 있는 것 아냐”하고 마누라에게 용기를 내서 한마디 하면 대번에 마누라의 따발총 공격을 받고 아버지는 쓰러진다. 자식들도 그저 ‘엄마’뿐인 것 같다. 마루 밑에 발로 채여 매맞고 움크린 강아지처럼 눈만 껌벅이는 아버지가 때로는 불쌍하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어린이 날, 어머니 날, 할아버지 날, 할머니 날이 있고 심지어는 10월 네 번째 일요일을 장모님 날로 정해놓고 가정의 화평을 제도화 했다. 그러나 미국에도 기가 막힌 것은 아버지 날이 없었다. 어머니 날 제정 후 64년 뒤에야 마지못해 아버지 날을 제정했다. 노약자와 여성인 어머니를 위해 여러 날을 제정했지만 장모님 날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나쁘듯 미국은 장모와 사위 사이가 험해서 사위가 장모님을 위해 존경심을 보이고 화해하라는 의미에서 장모의 날을 정했단다.

아버지 날에 대한 유례를 보면 이러하다. 1898년 미국이 어머니 날을 제정한지 2년 뒤의 일이다. 워싱턴 주에 사는 도드 여사는 어머니와 일찍 사별하고 5남매를 역경 속에서 길러낸 아버지 생각을 잊을 수 없어 목사를 설득해서 자신이 다니는 스포칸 교회에서 아버지 날을 정한 것이 미국 아버지 날의 뿌리다. 하지만 당시에 의회는 아버지 위신에 관한 문제라 하여 국가적인 ‘아버지 날’ 제정 의견을 묵살했다. 그후 여러 대통령이 거쳐갔지만 유야무야 되다가 스포칸 교회에서 아버지 날 예배를 시작한 지 62년만인 닉슨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6월 3번째 일요일을 아버지 날로 공식 제정했다. 뉴질랜드나 호주에서도 아버지는 마누라, 자식, 강아지, 고양이 다음으로 우선 순위 맨 꼴찌라고 한다.

1997년 6월15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지면을 아끼지 않고 6월15일 아버지 날에 치러진 조나단씨의 추도식을 대서 특필했다. 흑인 빈민촌의 한 학교에서 백인 조나단씨의 추도식에 수백 명의 흑인 아버지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관속에 누운 조나단씨의 시신을 부여잡고 ‘아버지’를 부르면서 애통해 하는 모습이 TV 화면과 신문 지상 화보로 크게 보도되었다. 언론은 “미국에서 아버지 날이 제정된 이래 가장 뜻있는 아버지 날”이라고 논평했다.



미국 굴지의 재벌 2세로서 청년기를 보낸 조나단씨. 그는 어느 날 빈부의 차이로 인한 사회 혼란과, 청소년들의 고통에 커다란 느낌을 받고 야밤 도주식으로 저택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한 곳이 흑인들이 사는 뉴욕 뒷골목 빈민촌. 폭행과 절도, 강도 등 범죄율이 높은 이곳에서 조나단은 우여곡절의 갖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못된 흑인들을 인간애로 감싸 안으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했다. 흑인 청소년들의 탈선 원인은 가정의 불화와 교육의 부재이며 정부 측의 따뜻한 배려와 화합을 이루고자 하는 정책 부재라는 점을 깨달은 조나단은 우선 가난한 흑인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의 교육을 자청했다.

조나단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의 교사가 아닌 아버지가 되리라’는 결심을 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분신이고 아들, 딸이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허물지 않기로 하나님께 맹세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개의치 말고 위선적인 마음을 죄악시하며 행동으로 아버지 노릇을 하게 해달라고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했다. 결식 학생들에게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여주고, 아픈 학생에게는 집에까지 찾아가서 이부자리를 펴주며 밤새 간호하였고, 병원비를 부담하는가 하면 자신의 피까지 헌혈하는 아비의 정을 듬뿍 주었다.

학생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고 미국 사회에서 알아주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뒷 골목에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을 교내로 불러들여 농구팀을 구성했다. 오하이오에서 개최되는 전국 중학교 농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행기표 값을 구하기 위해 정부기관과 사업가들을 설득해서 모금을 했고,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전국 10위권 내의 명문학교 학생들로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술주정뱅이 학생 아버지와 결투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그들의 직장 알선에도 앞장섰고,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정부 기관을 방문해 빈민가에 의류 가공 공장 유치 협조를 당부하면서, 주민들에게는 사랑 받는 동네가 되도록 바르고 부지런하게 생활하자라는 식의 캠페인도 벌렸다.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나단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흑인 아버지들은 자기가 못 다한 아버지 노릇을 다했던 분이라며 이들도 조나단을 “Father”로 불렀다. 조나단은 삶의 보람을 찾고 이곳 모든 이의 아버지로 바른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뜻하지 않은 총기 사고로 피살된다. 뉴욕 할렘가에서 열린 조나단의 추도식에 모인 흑인들은 “19세기가 신(神)을 죽인 세기라면, 20세기는 아버지를 죽인 세기”라고 슬퍼했다.

우리 모두에게 나의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라는 말은 한 카테고리의 최고 우두머리를 뜻한다. 정신적 우두머리요, 그 집단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지도적 우두머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신부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일까. 아버지의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기억에서 흐려져 가는 아버지를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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