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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부모 노릇하는 조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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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08/05/16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8/05/15 18:02

주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아무래도 저 아이를 기숙학교에 보내야 되겠어요. 가슴이야 아프지만 제가 그냥 데리고 있다가는 저 아이의 인생이 망가질 것 같아서요." 13살짜리 외손녀 S를 갓난 애기 때부터 키운 할머니의 결정이다. 외손녀를 나에게 데려 온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S가 그녀의 엄마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랐다. 할머니의 외동 딸 그러니까 S의 엄마는 음주 및 약물중독 때문에 재활원에서 살고 있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서도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거부했다. 파괴적인 생활 중간에 그녀는 두 딸을 낳았다. 그리고 바로 그녀의 큰 딸이 S이다.

이 외손녀를 잘 키우려고 할머니는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근처 꽃집에 취직해서 일을 했는데 얼마전에 가게의 유니폼을 입은 채로 외손녀를 데리고 왔다. "바로 이번 주말이 '어머니날'이라 바빠서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의사와의 약속 시간은 꼭 지켜온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S는 13살이라고 보기에는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운 몸매의 백인 소녀이다. 항상 우울하고 술과 마약에 젖어 있는 엄마 대신에 외할머니와 살기를 선택했던 똑똑한 아이다.

그러나 유전인자의 힘은 컸다. 엄마가 앓던 '조울증'을 2~3년 전부터 보이면서 할머니를 슬프게 했다. 우선 '주의산만 증세'를 보이더니 심한 정서의 불안정으로 '우울 증세'와 분노의 폭발 현상이 잦아졌다. 친구들과의 싸움은 물론 할머니에게도 폭행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남자 친구들과 집을 나간 후에 아무 연락이 없어서 할머니가 경찰을 불러야 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정신병 진단을 받고서 약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조울증' 환자들은 '과대망상'을 갖기 쉽다. '약을 먹지 않고서도 내 능력으로 내 병을 다스릴 수 있다'든가 아니면 '그런 정신병이 나에게 올 리가 없다' 등등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외손녀의 학교를 찾아갔다. 교장 선생님과 학교 심리학자와 의논해서 기숙하여 살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학교(Residential School)에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간 제가 나가던 '부모 노릇하는 조부모들의 모임'에서 많은 격려를 받고 드디어 결심을 굳혔습니다." 할머니는 그간 걱정이 많았었다. 외동딸이 자신의 인생을 처참하게 망가뜨리는 과정을 보면서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외손녀를 열심히 기르는 보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외손녀마저 비슷한 증세를 보이자 재빨리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약물 치료와 상담만으로는 날뛰어대는 충동을 할머니 혼자의 힘으로 다잡아 주기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의 도움을 받아 규율이 짜인 환경으로 외손녀를 옮겨서 충동 조절을 가르치려 계획한 것이다. 그 동안에 나갔던 '부모 노릇하는 조부모들의 모임'에는 많은 조부모들이 모여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왔다.

"제 욕심으로야 이 아이를 늘 옆에 두고 싶지요. 그러나 제 능력으로는 더 이상 돌볼 수가 없으니 적절한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옳겠지요?" "나 아무데도 안 갈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던 손녀도 잠잠해진다.

할머니의 사랑을 그녀는 믿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충동을 제어하기에는 할머니는 이미 힘이 없다는 것도 안다. "거기 가면 남자애들도 있어요? 그리고 외출할 수도 있어요?"라고 묻는 것은 결국 할머니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표시일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서 냉정한 이성의 힘으로 아이를 다른 환경에 보내기로 한 할머니에게 나는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의 힘을 옆에서 북돋아 준 '부모노릇 하는 조부모 모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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