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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일등 책사는 제갈량 아니다' 이중톈, 삼국지를 다시 말하다

유비에 쓴소리한 조자룡, 능력 뛰어난 장수였지만 미움받아 장군 승진 못해

왼쪽부터 이중톈, 이문열

왼쪽부터 이중톈, 이문열

유비와 조조, 손권이 천하를 셋으로 나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중국의 삼국시대. 그로부터 비롯한 역사 기록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는 지금도 동양의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다. 아시아의 영원한 고전으로 치부되는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까는 그래서 아직도 중요하다. 중앙일보는 15일 중국 고전에 대한 참신한 해석으로 당대의 중국 최고 인기 작가로 떠오른 이중톈(易中天) 샤먼대학 교수, 소설 ‘삼국지’로 초베스트 셀러를 기록한 한국 작가 이문열씨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으로 초청했다. 이중톈 교수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구성의 차이점에 주목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문열씨는 20여 년 전 대했던 삼국지의 세계를 지금에 이르러 다시 보게 되는 감회를 털어놓았다. 두 명인에게서 이 시대에 삼국지가 지니는 의미를 들어 본다.

'삼국지강의'(원제 '品三國')라는 저서로 중국에 새삼 '삼국지'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중톈은 방대한 삼국시대의 기록 가운데 소설적인 낭만성보다는 역사적 교훈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탄탄한 사실(史實)에 입각해 위(魏).촉(蜀).오(吳) 삼국이 벌인 경쟁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자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주최로 열린 '삼국지를 다시 말하다' 포럼에서 우선 동양식 지혜의 원천이라 평가받는 '삼국지'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인류의 역사는 홍수와 지진 등 천재지변과 사람이 일으킨 재앙(人禍)을 딛고 세워졌다"며 "중국의 삼국시기는 대표적인 전쟁의 시대로 우리에게 아직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난과 극도로 불안한 시기에 살다간 사람들이 붉은 피로 써 내려간 이 시기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인도주의"라고 말했다. 영웅과 호걸의 지략이 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낭만성보다는 경쟁과 반목 속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화로부터 뭘 깨우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얘기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구성이 부딪치는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대한 시각차도 드러냈다. 그는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면서까지 제갈량을 채용한 유비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역사적 사실로 보면 제갈량의 위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갈량이 소설에서는 촉나라를 유지하는 일등 공신으로 그려지지만 그는 사실 실질적인 직무를 제대로 얻지 못했던 사람"이라며 "유비는 제갈량을 그저 친구와 손님으로 대했으며 실제 일등 책사는 방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비는 제갈량에 대해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었다"며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 유선을 부탁(托孤)하는 자리에서도 다른 신하인 이엄(李嚴)을 배석시켰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설의 큰 단원의 하나인 적벽(赤壁)대전에 대한 장면도 많이 부풀려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조조의 80만 대군은 실제 20만~25만 병력을 과장한 숫자"라며 "조조의 패전 원인도 바람을 빌려 화공(火攻)을 선택한 제갈량의 지략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핵심 원인은 조조의 군대가 얻었던 유행병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촉의 명장인 조자룡(趙子龍)이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왕실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 아니냐에 대한 그의 해석도 눈 여겨 볼 만하다. 그는 "소설에서 촉에는 관우와 장비를 비롯해 마초와 황충 조자룡 등 오호상장(五虎上將)이 있었다고 적었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며 "조자룡을 뺀 네 명만 실제 장군에 임명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자룡은 실제 매우 뛰어난 장수이기는 했지만 유비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장수라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또 "유비가 죽기 전의 마지막 전쟁에서 오나라 장수 육손에게 대패를 했는데 조자룡은 이 싸움에 가장 크게 반대한 사람의 하나"라며 "결국 유비의 리더십을 보더라도 지도자가 된 사람은 부하로 하여금 진실과 제대로 된 의견을 말하게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고전에 나타나는 '좋은 리더십'에 대한 견해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좋은 리더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재의 마음을 얻는 인물"이라며 대표적인 사례로 '초한지(楚漢志)'의 영웅이자 한(漢)왕실을 세운 유방을 꼽았다. 그는 "유방의 적장인 항우는 혼자만 뛰어났지 밑에 사람이 없었다"며 "그러나 유방은 스스로 잘 아는 게 없었으나 주변에 사람을 두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에게 묻는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유방의 직업 자체가 리더"였다는 것. 유방은 인재 선발에도 뛰어났으며 참모들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받아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유비의 성공 사례도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번 옆에 둔 사람은 끝까지 형제처럼 챙겼던 사람이 유비"라는 설명이다.

조조는 모든 공과를 부하에게 일임하는 스타일이어서 "공을 세운 부하에게 선물을 줄 때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크게 주면서도 책임을 묻는 데는 매우 엄했다"는 평가다. 그는 또 "오나라의 손권은 항상 젊은 인재를 등용해 좋은 부하들이 면면히 이어졌다"며 "주유와 노숙 여몽으로 이어지는 참모가 결국은 손권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톈은 강연 말미에 '삼국지'의 반면교재적인 성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화에 따른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요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삼국지식의 모략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며 "그러나 당대의 역사적 환경은 '상대방을 내가 어떻게 먹어치우느냐'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한다(一家獨當)'는 사고를 보여주고 있어 경계해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벌어지는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싸움 정신은 이제 지양해야 할 것"이라며 "서로가 승리하는 윈-윈의 관점 조화와 협력으로 상생의 발전을 추구해야 할 시점에서 삼국지의 정신세계는 맞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삼국지의 세계를 다시 살펴 현대인의 교훈으로 되살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중톈은

1947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당시인 65년엔 신장(新疆)자치구로 하방돼 노동을 했다. 1981년 우한(武漢)대 문학석사 취득 후 줄곧 강단에 섰다. 현재 샤먼(廈門)대학 인문대학원 박사지도 교수다. 문학·예술·미학·심리학·인류학·역사학 등 학제 간의 벽을 넘나드는 글쓰기와 강연에 탁월하다. 그는 2005년 중국중앙방송(CC-TV)의 인문학 강좌인 ‘백가강단(百家講壇)’에 출연해 ‘ ‘초한지’와 ‘삼국지’를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중국에 고전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무명의 학자가 TV 강연을 통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이중톈 신드롬’을 만들기도 했다. 포브스 중문판이 선정한 ‘2008 명인방’ 42위에 올랐다. 국내에도 ‘중국도시 중국사람’ ‘삼국지강의’ ‘초한지강의’ ‘제국의 슬픔’ ‘품인록’ ‘삼국지강의2’ 등이 번역돼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첫 방한에 맞춰 출판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는 중국의 역대 왕조를 망하게 만든 구조적 시스템을 특유의 쾌도난마식으로 설명했다.

유광종 기자

'적벽대전 기록은 1페이지도 안 돼'
이문열, 삼국지를 다시 말하다


"2000년대 초두에 터진 '시대와의 불화'가 나를 다시 '상상력의 원전'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소설가 이문열(60)에게 '삼국지'가 갖는 의미는 그 누구보다 각별했다. 그의 '대표작 아닌 대표작'으로 불리는 '평역(評繹) 삼국지'(민음사.1988년 10권 완간)가 국내 출판 사상 최고 베스트셀러 기록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15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삼국지를 다시 말한다'를 주제로 연 포럼에서 '삼국지' '초한지'등 중국 고전 소설에 자신이 매료된 인연을 털어놨다.

80년대 중반 국내 문단의 기린아로 성큼 발돋움한 34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 이문열이 새롭게 손을 댄 작업이 '삼국지 평역'이었다. 출판사 대표의 권유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삼국지' 번역자로 유명한 요시카와 에이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결심을 굳히게 됐다. 인기작가였던 요시카와가 60세가 넘어 인생을 회고하며 "자신이 낸 수십 권의 책을 다 합쳐도 '삼국지' 하나보다 적게 팔렸다"는 말에 자극받은 것이다. 현재 이문열의 작품 전체(100만 권 이상 팔린 5종 포함)를 합쳐도 그의 '삼국지 평역'을 못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기록될 50대 중반 그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삼국지'를 운명처럼 손에 든다. 2000년대 들어 심화된 '시대와의 불화'가 계기였다. 이문열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이 그의 책을 장례식 지내던 일은 불화의 극점이었다. 마음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삼국지'를 다시 들었고 이어 '초한지'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2000년 무렵 내 책이 불타는 것을 목격하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혼란과 격앙을 피해가는 수단으로 '삼국지'에 잠겨 살아볼까 생각했고 이어 '초한지'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지요."

◇상상력과 시대정신의 이중주=이문열은 "'삼국지 평역'의 경험이 있었기에 '초한지' 창작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삼국지'와 '초한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한한 상상력이라고 했다.

소설 삼국지(14세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가 상상력과 시대정신이 빗어낸 이중주였다고 이문열은 해석했다. 80년대에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삼국지'(3세기 진수의 '삼국지')를 검토하며 '역사적 사실' 자체는 매우 간략한 것임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예컨대 소설에서 휘황찬란하게 묘사된 적벽대전조차 역사 기록으로는 한 페이지 분량도 남아 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진수의 '삼국지'에서 나관중의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1000년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힘은 다름아닌 상상력이었다. 배송지의 '삼국지' 주석 작업과 백성들의 애환과 희망이 섞인 민담.설화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 있었다.

상상력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300여 인물의 다양한 캐릭터로 구체화된다. 이씨는 "300여 등장인물의 행동양식 지략 말의 기교 등은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각기 변별력 있게 행동하고 사고한다는 점이 감동이었다"고 했다.

상상력과 함께 덧붙여지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나관중의 소설이 표방하는 '촉한 정통설'이 대표적이다. "80년대에 삼국지 자료를 수집하러 대만에 갔을 때 만난 대만대의 삼국지 전문가였던 오홍일 교수가 '촉한 정통론'과 '관우 숭배'는 건드리지 말라고 충고하더군요. '촉한 정통론'에서 상상력에 시대정신이 개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족인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한족 민족주의 정통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

◇"나만의 삼국지 만들고 싶었다"=이문열은 "25년 전 나관중본을 재구성하면서 '이문열의 삼국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소설 '삼국지'만 해도 여러 가지 판본이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모종강본과 이탁오본 등이 그것이다. 그 같은 자신감은 '초한지' 창작에서 더욱 발휘된다. '초한지' 창작을 위해 사마천의 '사기'를 여러 차례 정독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살찌우는 상상력과 시대정신의 위력을 더욱 확인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기'에 기록된 초한 쟁패의 역사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상상력의 원전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춘추필법과는 또 다른 리얼리티라고 할까요."

예컨대 나관중 소설을 보면 서서라는 사람이 유비를 만났다가 조조에게 돌아가는 장면에서 서서의 어머니가 아들이 유비를 섬기기를 바라며 자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의 원형을 '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항우가 유방 휘하에 있던 장수 왕릉의 어머니를 잡아 회유하는 장면으로 이 부분에서 왕룽의 어머니는 유방이라는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항우에게 가지 말라며 목을 찔러 자살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 제갈공명의 아이디어로 널리 알려진 삼분천하의 논리도 그 상상력의 원전은 '사기' 가운데 '한신 열전'에 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시대 변화를 담아 '삼국지'를 다시 저술할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이 나오자 이씨는 "동양의 소설 '삼국지' 흐름을 보면 대개 30년 정도의 수명을 보이는데 '이문열 삼국지'는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다"며 "오늘의 시대와 언어.호흡을 더 잘 맞출 수 있는 젊은이들이 나와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문열은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대 사범대에서 수학. ‘사람의 아들’로 제3회 오늘의 작가상(1979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제11회 이상문학상(1987년) 등을 수상하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문열이 평역한 ‘삼국지’는 누적 판매부수 1700만 부로 한국 출판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온전한 창작물이 아니기에 본격적인 대표작이라 할 순 없지만, 대중적 인지도나 판매부수를 감안할 때 ‘대표작 아닌 대표작’으로 부를 수 있다.
그는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투영해 삼국지를 만들어 내 온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특정 인물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깎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관중의 소설에선 유비의 ‘촉한 정통론’이 두드러졌는 데 반해 이문열의 ‘삼국지 평역’에서는 조조의 정통성이 강조된다.
1988년 ‘평역 삼국지’를 완간했고, ‘수호지’ 번역 출간에 이어 오는 5월 말 ‘초한지’ 완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소설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셈이다.

배영대.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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